<과학이 보인다> 광자프로세서 연구

 「전자의 시대는 가고 광자 시대가 온다.」

 PC 역사를 새로 쓰게 될 광자 프로세서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실리콘반도체 시대에는 정보 비트들이 컴퓨터 회로를 타고 전자 형태로 움직였다. 하지만 실리콘 칩을 대체할 차세대 프로세서의 비밀은 전자(electron)가 아니라 광자(photon)가 데이터를 실어나르게 된다는 데 있다.

 PC 가격은 매년 하락하고 정보처리 속도는 날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지만 마이크로프로세서 기술은 얼마 안가 물리적 한계에 부딪치게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이제 과학자들은 실리콘이 아닌 새로운 물질로 그 한계를 극복할 방법을 찾고 있다. 특히 전자광학(electro­optics) 분야의 연구가 활발하다.

 사실 이론적으로 광자보다 더 빠른 정보전달 수단은 없다. 데이터를 광자로 운반하게 되면 컴퓨터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질 수 있다. 광학적 기술은 이미 지난 20년 동안 광섬유(fiber­optic) 케이블 형태로 데이터 전송에 사용돼 왔다.

 전화기를 입에 대고 말을 하면 사람 목소리가 전기적 펄스 신호로 바뀌어 전화국의 스위치보드로 보내진다. 전기적 펄스 신호는 디지털 시그널로 변환된 후 작은 빛의 묶음(packet) 형태로 광섬유 선을 타고 흘러간다. 광섬유 전송라인의 다른 쪽 끝에 도착한 광자 패킷들은 다시 전기적 펄스 신호로 바뀐다. 이러한 과정은 1초 동안에 수백만번도 일어날 수 있다.

 예일대와 벨 연구소, 독일의 막스 플랑크 물리학연구소 과학자들은 지난해 기존레이저보다 1000배나 강력한 첨단 초미니 레이저를 개발했다.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이 마이크로레이저는 통신 시스템 속도를 놀랄 만큼 가속시켜 새로운 차원의 네트워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제 빛의 속도로 데이터를 나르는 광섬유 네트워크에 이어 광자 프로세서로 작동하는 컴퓨터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한 개의 전자는 컴퓨터화된 스위치를 끄고(0) 켜는(1) 일만 할 수 있지만 광자는 동시에 수많은 병렬 프로세스가 가능하기 때문에 컴퓨터의 계산기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미국 앨라배마주 헌츠빌에 있는 나사의 마셜항공우주센터 연구진들은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까지 광자를 이동시키는 광 회로기판(circuit board for light)을 연구하고 있다. 이 회로기판은 유기물질에서 얻어낸 특정한 패턴의 얇은 고분자 박막들로 이루어진다. 마치 광섬유 케이블의 한 가닥처럼 이 고분자소재는 빛을 원하는 경로로 보내준다. 광섬유에서와 달리 빛이 지나가는 길들은 훨씬 좁고 가벼우며 융통성이 있다.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유기물질은 빛의 경로 안에서 다른 물질들의 고분자 덩어리(polymer aggregate)들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덩어리는 통과하는 광 펄스를 산란시켜 데이터 전송을 방해하게 된다.

 이같은 문제점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유기고분자 박막을 우주 비행선과 같은 우주공간에서 성장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우주에 박막 제조시설을 만든다는 것은 비용의 경제학을 무시하는 일이 된다.

 마셜항공우주센터의 돈 프레지어 박사팀은 우주선 안에서 만든 박막들이 어떻게 다른가를 분석하고 그러한 공정을 지상에서 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 프레지어 박사는 오는 2001년까지 광학적 컴퓨터 개발을 위한 이미징 소자의 원형을 개발할 계획이다. 만일 그 연구가 성공한다면 실리콘 시대는 저물고 정보통신의 메카 실리콘밸리는 그 이름을 바꿔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선기기자 s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