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의 투자자들이 인터넷분야에서 발을 빼고 있다. 새로운 투자처로는 레드햇과 VA리눅스시스템스 같은 리눅스 회사들이 0순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달초 최고권위의 인터넷신문 「C넷」이 보도한 특종기사의 골자다.
야후재팬의 주가가 6억원대로 치솟은 것이 엊그제의 일인데도 불구하고 이 보도는 정보기술(IT)분야를 집중 공략해온 주식투자가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인터넷주의 고공행진에 드디어 브레이크가 걸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을 낳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하지만 더 큰 충격을 받은 곳은 인터넷서비스분야가 포함된 IT업계. 이제 막 부상한 인터넷서비스분야가 꽃봉오리도 맺기 전에 한물갔다는 것은 분명 당혹스러운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인터넷은 기술이 발전할수록 무궁무진한 응용분야와 엄청난 산업연관효과를 가져다준다고들 하지 않았는가. 실제 미국의 경우 지난 4월부터 완만하지만 인터넷주의 전반적인 하락세 징후가 포착됐다. 야후 등 불과 몇달 전까지 1000%씩 치솟던 인터넷서비스 분야는 일제히 40% 가까이 급락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5월에는 신규 주식 가운데 48%가 상장과 동시에 발행가 밑으로 추락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최근 미국·일본·한국 증시에서 인터넷주들이 재평가의 도마 위에 올랐다. 올해 수익률 예상치를 바탕으로 야후·아메리카온라인·E트레이드 등의 적정 주가를 추정 조사한 결과, 주식의 과대평가율이 200∼500%에 달했다. 게다가 아마존 등 인터넷 관련기업의 절반 이상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투자자들이 이런 거품환경에 지레 겁을 먹고 인터넷분야에서 철수하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일 수 있다. 그런데 과연 투자자들이 오직 이 거품 때문에 인터넷분야에서 철수하려는 것일까. 미국의 경우만을 놓고 본다면 그답은 분명 「노」다. 미국이라는 조건을 단 것은 미국이 인터넷 등 전세계 IT시장을 선도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궁금증은 바로 이 대목에서부터 풀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IT분야 고급정보에 익숙한 미국의 투자가들은 인터넷주를 대신할 새로운 유망주를 찾아나선 듯하다. 인터넷분야가 더이상 IT 비즈니스 기회를 보장하는 산업 리더로서 조건에 부합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다면 주식과 IT분야 모두 미국 직영향권에 들어 있는 한국의 경우 아직은 인터넷주가 최고를 구가하고 있지만 투자자들이 발을 빼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얘기가 된다. 인터넷기술이 발달하면 할수록, 인터넷사용자가 늘면 늘수록, 인터넷 그 자체가 비즈니스의 목적이 되는 경우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제공하는 서비스 정보를 다른 곳에서 빌려오고 있는 미국의 야후, 한국의 골드뱅크 등 인터넷기술을 활용한 서비스가 주목적인 업체들의 설자리도 점점 좁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불과 2, 3년 전만 해도 정보와 자본력을 가진 대다수 기업이 인터넷의 잠재력을 이해하지 못한 반면 소규모 벤처기업들은 간단한 아이디어로 인터넷사업에 뛰어들어 엄청난 성공신화를 만들 수 있었다. 미국의 야후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제는 반대로 정보와 자본력을 가진 증권사·백화점·여행사·도서관·교육기관 등이 인터넷을 본격적인 비즈니스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처음에는 인터넷(기술보유기업)이 정보(소유자)를 부렸지만 앞으로는 정보가 인터넷을 부리게 된다는 얘기다.
인터넷주에서 발을 빼는 투자자의 결정은 바로 여기까지를 생각한 결과라 할 수 있다. IT분야 주식투자자들에게 인터넷서비스분야는 한낱 투자 호재에 불과한 것일 수밖에 없다. IT분야가 주식시장에서 각광을 받기 시작한 80년대 이후 IT산업을 주도한 종목이나 기업은 수없이 명멸해 갔다. 80년대 「해가 지지 않는 컴퓨터왕국」 IBM을 상징하던 메인프레임컴퓨터주식, 90년대 초반 PC산업의 급부상을 의미하는 인텔의 펜티엄주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주, 그리고 90년대 중반 월드와이드웹 브라우저의 위력을 알린 넷스케이프의 내비게이터주 등은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인터넷주는 지난 97년 이후 내비게이터로부터 황제관을 물려받았다.
언제나 현실에 반발자국씩 앞서가는 IT분야 투자자들은 이제 또다시 새로운 황제관의 주인을 찾아나섰다. 약간은 불투명하지만 인간들의 변덕 심한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것, IT분야에 새바람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 하나, 어느정도 거품이 일어나도 무방한 것 등의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대상은 현재로서는 리눅스가 가장 앞서 있다. 이렇게 본다면 단 한치의 계산 오차도 허용되지 말아야 할 IT분야는 역설적이게도 거품에 의해 발전해왔다는 얘기가 된다. 앞으로 한국에도 이런 법칙과 과정이 적용될지 지켜보는 일도 적지않게 흥미로운 일일 것 같다.
<온기홍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