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지 않은 시일에 우리는 그동안 안방에서 접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매체와 만나게 된다. 새로운 매체는 우리가 매일 접하는 TV수상기와 모양은 같지만 기능적으로는 전혀 다르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같은 유형의 TV를 "지능형 TV" "인텔리전트 TV" "양방향TV"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한동안 TV진영과 PC진영간에 차세대 TV포맷을 놓고 치열한 경합 벌이기도 했으나 최근 들어선 TV진영쪽으로 전세가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TV와 PC진영간의 싸움이 어떻게 전개되든지간에 싸움의 중심에는 항상 "디지털"이라는 명제가 도사라고 있었다. "디지털"이라는 명제는 방송과 통신의 융합을 관통하는 제1의 원칙이면서 동시에 방송계에 엄청난 변화의 바람을 몰고올 것으로 예상되는 변화 요인이다. 새 밀레니엄의 방송체제로 인식되고 있는 디지털방송의 실체와 향후 전개 방향, 영향 등에 대해 수회에 걸쳐 집중 조명한다.
<편집자>
도대체 「디지털방송의 도래」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선 가장 많이 논의되고 있는 지상파 디지털방송의 기술적인 의미는 의외로 간단하다. 종전에 방송사들이 프로그램을 전송하기 위해서는 채널당 6㎒대역의 주파수 자원이 필요했으나 디지털로 전환하면 동일한 대역폭을 이용해 NTSC급 프로그램을 4∼6개까지 전송할 수 있거나 HDTV급 1개 채널을 전송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기술적인 차원의 간단한 설명으로는 디지털방송이 몰고올 변화를 가늠조차 하기 힘들다.
예를 들어보자.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98년 개발한 웹TV의 기능을 개선한 「웹TV 플러스」를 내놓았다. TV시청자들은 이를 통해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수상기의 작은 화면에서 웹을 접속할 수 있다. 현재 월가입비 24.95달러에 8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는데 방송계 전문가들은 만일 웹기반의 통신서비스인 아메리카 온라인(AOL) 서비스가 양방향 세트톱 박스를 통해 TV와 연결된다면 웹TV 가입자가 엄청나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최근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케이블TV 전시회(NCTA)에선 디지털 세트톱 박스가 출품돼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 제품은 현재의 케이블TV용 컨버터·케이블모뎀·일반전화 기능 등을 모두 합친 제품으로, 케이블TV에서 제공하는 쇼핑 프로그램을 보면서 상향 대역을 이용해 상품을 주문하고 데이터통신·전화도 가능케 한다.
티보TV, 리플레이 등 양방향TV 솔루션업체들은 디지털 녹화기능을 갖춘 세트톱 박스를 개발, 방송사들과 제휴해 서비스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 솔루션을 사용하면 시청자들은 방송중인 프로그램을 일시 중지시키거나 되감을 수도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의 프로그램이나 배우들을 미리 입력하면 세트톱 박스가 자동으로 검색해 해당 프로그램을 찾아간다. 앞으로 디지털 세트톱 박스는 하드디스크를 내장, 대용량의 방송 프로그램을 저장할 수도 있다.
이같은 서비스가 활성화되면 「마이채널」 개념이 뿌리 내리게 된다. 수백개에 달하는 채널 중 자신의 기호에 맞는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게 가능해진다. 일일이 신문의 프로그램 편성표를 보면서 프로그램을 선택하느라 골치를 썩일 필요가 없어진다.
다매체 다채널 환경하에서는 EPG(Electronic Program Guide)채널이 인기를 끌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의견이다. 지상파·위성·케이블 등 여러 매체를 통해 공급되는 수백개의 채널정보를 시청자들이 모두 갖기는 힘들다. 따라서 EPG채널들은 이들 각 채널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의 예고편이나 맛보기 화면을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을 유인한다. 시청자들은 TV를 틀자마자 EPG채널을 통해 채널정보를 얻고 「계획 시청」을 한다. 인터넷을 접속하기 위해 「야후」나 「엑사이트」 등 포털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청자들은 TV를 보기 위해 EPG라는 「포털 채널」을 접속하게 될 것이다.
이미 케이블·위성방송 등 매체산업이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미국의 경우는 EPG채널이 활성화돼 있다. 프로그램공급사(PP)들은 EPG채널에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소개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물론 다른 어느 PP 못지 않게 EPG채널의 광고수익은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TV매체를 둘러싼 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우리는 그 변화의 소용돌 속에 어느새 들어와 있는 것이다.
<장길수기자 ks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