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PCB업체 한국시장 공략 본격화.. 국내기업 위기감 고조

 대만 인쇄회로기판(PCB)업체의 국내시장 공략 움직임이 현실화돼 국내 PCB업계가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대만의 중견 PCB업체 중 하나인 PWC사는 최근 국내 굴지의 컴퓨터 제조업체에 월 15만장(원판 기준으로 약 3000㎡) 정도의 다층인쇄회로기판(MLB)

을 공급하기로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홍콩과 대만에 생산 거점을 둔 W사도 국내 컴퓨터업체를 상대로 MLB 영업에 나서 상당규모의 물량을 거의 확보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여기에 대만의 유니써키트는 한국에 지사를 설립하고 다음달부터 PCB 영업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어 대만 PCB업체의 국내 PCB시장 공략 움직임은 가능성 타진 수준을 넘어 현실화됐다고 볼 수 있다.

 올초부터 대만 PCB업체의 국내시장 공습 경보음이 조금씩 울렸음에도 불구, 국내 세트업체의 구매 관행상 쉽사리 물량을 확보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해온 국내 PCB업계는 대만 PCB업체들이 예상외로 빨리 국내시장에 안착하자 크게 당황하는 분위기다.

 특히 PWC사가 이번에 수주해간 컴퓨터용 메인보드 물량은 국내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고 대덕전자와 이수전자가 공급해온 물량 중의 일부인 것으로 밝혀져 국내 PCB업계의 충격은 더욱 큰 것으로 분석됐다.

 품질과 납기에 관한한 여타 경쟁업체가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엄격한 기준으로 고객을 관리해온 대덕전자와 이수전자가 순식간에 대만 중견 PCB업체에 물량을 빼앗겼다는 것은 앞으로 중견 PCB업체들이 그동안 공급해온 PCB 물량 중 상당량이 대만업체로 넘어갈 수 있음을 예고한다고 할 수 있다.

 한 PCB업체 사장은 『아직 초기단계라 예단하기 어렵지만 대만 PCB업체가 국내 PCB 수요의 일정 부분을 가져갈 것은 확실하다』면서 『일반 4층 MLB가 대만 PCB업체의 주 공략 타깃인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PCB업체 사장은 『대만 PCB 가격은 국산보다 약 15% 정도 낮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방안 마련에 부심하는 국내 주요 세트업체에는 대만산 PCB가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면서 『특히 국내 주요 세트업체들이 대만 PCB업체가 제시한 낮은 가격을 가지고 기존 거래선인 국내 PCB업체에 비슷한 가격에 납품해줄 것으로 요구할 경우 국내 PCB업체들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 굴지의 컴퓨터보조기억장치업체인 시게이트에 MLB를 공급해온 국내 대기업 PCB업체 관계자는 『시게이트 구매 담당자가 대만산 가격에 버금가는 조건으로 PCB를 공급할 수 없으면 어쩔 수 없이 대만으로 구매선을 전환할 수밖에 없다』고 밝히면서 『대만 PCB업체를 제2, 제3 벤더로 지정해 놓았음을 암시했다』고 전했다.

 이는 국내 PCB 물량뿐만 아니라 그동안 국내 PCB업체가 공급해온 해외 물량도 대만업체들이 노리는 먹이감이 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국내 전자산업이 성숙단계에 접어든 80년대 이후 안방시장이나 다름없던 국내 PCB시장이 대만 PCB업체의 무차별적 공세에 유린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국내업계에 확산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것에 국내 PCB업체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가격으로 밀고 들어오는 대만 PCB업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제품의 고부가가치화 밖에 없다는 원론적인 방안만이 떠오를 뿐, 구체적으로 무엇이 고부가가치 제품이고 물량은 얼마만큼 되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다』고 심경을 토로한 PCB업체 사장의 말은 국내 PCB업계가 안고 있는 고민을 함축적으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이희영기자 h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