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밀레니엄 리더 (2)

크리스토스 코차코스 E트레이드 회장

 크리스토스 코차코스(51)는 돈의 흐름을 바꿔놓은 남자다. E트레이드의 회장 겸 CEO인 코차코스는 월스트리트를 지배해온 거대 투자회사에 도전장을 내민 사이버증권계의 대부라고 할 수 있다.

 코차코스가 사령탑을 맡고 있는 E트레이드 본사는 금융1번가 뉴욕이 아니라 정보통신의 메카 실리콘밸리, 팔로알토에 위치해 있다. 창업자 빌 포터는 원래 물리학자 출신의 이름있는 투자자였다. 80년대 초 「트레이드 플러스」라는 온라인 트레이딩 서비스를 시작한 포터는 주식거래를 하면서 왜 브로커에게 수백 달러의 중개료를 뺏겨야 하는 것일까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됐다. 그는 그물망 네트워크 사회가 되면 투자자들이 안방에서 주식시장에 직접 접속함으로써 턱없이 높은 중개수수료를 10∼20달러 수준까지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이버 증권을 위한 인프라가 충분하지 못했던 80년대가 지나고 90년대로 접어들자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91년 E트레이드사를 설립한 포터는 아메리카온라인과 컴퓨서브를 이용한 모뎀접속 방식의 온라인 증권서비스로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96년부터 웹주소 「http://www.etrade.com」을 통한 주식거래를 선언함으로써 최초의 사이버증권사가 됐다.

 코차코스가 경영을 맡게 된 것은 바로 E트레이트가 사이버증권사로 변신한 96년이다. 코차코스는 IT업계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의 E트레이드 회장 취임은 다소 이례적으로 보였다. 19년간 페더럴 익스프레스에서 일한 후 마케팅 리서치회사 AC 닐슨의 사장을 지냈을 뿐 정보통신업계에는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차코스는 윌리엄 패터슨 칼리지를 거쳐 페퍼다인 대학 석사, 그리고 영국 런던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경제 전문가였고 월스트리트의 혁명을 주도할 만한 적임자였다. 게다가 CEO로서 그는 추진력이 강한 지휘관 스타일이었다. 사실 코차코스는 베트남전에 참여해 무공훈장까지 받았던 지휘관 출신이다. 그는 야후·ZDNet과 잇따라 협력계약을 맺는 등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고 나스닥에 상장된 E트레이드 주식은 천정부지로 솟아올랐다.

 코차코스 경영전략은 브랜드·콘텐츠·글로벌화로 압축된다. 브랜드전략은 마치 검색엔진의 야후처럼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편한 이름 「E트레이드」를 사이버증권의 대명사로 만들기 위해 홍보력을 집중하는 것이다. 콘텐츠는 주식정보 이외에도 뉴스속보, 다양한 그래프와 리서치 자료 등을 무료로 제공해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전략이다. 또 영국·프랑스·캐나다·호주 등 30여개국에 해외망을 구축하고 국내에도 곧 상륙 채비를 서두르는 등 적극적인 글로벌화를 추진하고 있다.

 코차코스는 공개석상에서 『내 딸에게 중개업만은 손대지 말라고 충고했다』고 농담을 던진 적이 있다. 그의 말속에는 할인율 경쟁으로 불붙은 사이버 주식중개가 결국 투자의 개념을 바꾸어 놓을 것이고 그 불길은 부동산·골동품·무역 등으로 번져 결국 중개업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의미가 숨어 있다.

 코차코스는 직원들 사이에 헤드 혼초(Head Honcho:대장) 또는 치프 비저너리(Chief Visionary)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리스계 미국인으로 연봉을 삭감한 대신 회사 지분을 선택해 거부가 된 그는 앞날을 내다보는 방향제시자로서 오늘도 E트레이드를 이끌고 있다.

<이선기기자 s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