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이후 최대의 국난이라 불리는 IMF관리체제에서 임금삭감과 구조조정 등 뼈를 깎고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겪어야 했던 전자·정보통신산업이 올들어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특히 수출증가에다 내수까지 호조를 보이면서 생산라인을 풀가동하는 업체가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상반기 전자·정보통신산업은 뚜렷한 회복세를 보였다. 민간경제연구소나 관련단체들의 조사에서도 2·4분기부터 시작된 경기회복세가 하반기에는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내부적으로 기업구조조정 효과가 가시화되고 내수경기가 살아나고 있으며 외부적으로 선진국 시장에서의 전자제품 수요가 확산될 것을 염두에 둔 전망이다. 물론 분야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가전·컴퓨터·통신기기·반도체 등 각 부문이 모두 고른 성장세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올 상반기 추정실적을 바탕으로 하반기 전자·정보통신산업 경기를 부문별로 진단해 본다.
<편집자>
프롤로그
전자·정보통신산업현장이 활력을 찾아가고 있다.
연초만 해도 가동이 중단돼 적막했던 공장들이 이제는 기계소리와 생산직 사원들의 바쁜 손놀림에다 물건을 실어 나를 트럭들로 북적이고 있다. 지난 5월중 국가공단의 평균 가동률은 80.9%로 IMF위기 당시인 97년 11월 가동률 80.3% 수준을 넘어섰다.
전자·정보통신관련 기업의 공장가동률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산업은행이 조사한 산업별 생산증가율을 보면 가전부문이 올들어 작년동기 대비 18% 증가했고, 컴퓨터·정보통신기기를 비롯한 산업용 전자부문의 생산증가율은 21%에 달한다. 이처럼 생산이 활기를 띠면서 인력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이같은 생산 증가율은 민간소비를 중심으로 한 내수회복과 선진국의 수요확대에 따른 수출 급증 때문이다.
토·일요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한산하다시피했던 용산전자상가에도 요즘 들어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주말에는 넓은 용산전자상가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그만큼 내수 경기가 살아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경기회복세 확산으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되면서 움츠렸던 소비심리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특히 지난해 연기했던 결혼이 올 들어 크게 늘어 혼수용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혼수용 필수품인 컬러TV·VCR·전자레인지의 판매는 작년보다 20% 이상 늘었다는 게 일선 판매상들의 얘기다. 이에 따라 올 상반기 가전제품의 내수는 2년 연속 감소세에서 벗어나 35% 정도 증가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컴퓨터업체들도 저가형 제품을 주력으로 한 영업전략으로 신규 수요가 꾸준히 창출되고 고성능 주변기기 수요가 늘어나 작년의 극심한 내수침체에서 벗어났다. 민간 수요는 물론 공공부문의 수요 증가가 한 몫을 한 것이다. 통신분야는 이동통신분야의 가입자 증가추세가 둔화되면서 단말기 수요 정체가 예상됐으나 사업자들의 적극적인 마케팅 노력과 단말기 보조금 축소에 따른 가입비 상승에 대비한 수요자들의 가입이 확대돼 시장규모는 작년 동기에 비해 오히려 40% 이상 증가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내수뿐 아니라 수출도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미국·일본·동남아 등 주력시장이 살아나면서 반도체와 정보통신기기를 중심으로 수출이 급증하고 있다.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는 물건이 없어서 수출을 못할 정도였다. 미국 중산층 시장을 겨냥해 개발한 보급형 PC는 현지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제2의 컴퓨터수출 전성기가 도래하는 것 아니냐는 예측을 하게 하고 있다.
동남아·러시아 시장이 살아나면서 가전제품 수출도 마이너스 성장에서 플러스 성장세로 돌아서 0.5%의 신장세를 보인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해외생산이 늘고 있는 TV 등 영상기기를 제외한 에어컨 등 백색가전 일부 품목의 수출이 신시장 개척으로 호조세다. 또 컴퓨터업체들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사업개편 등을 통한 경영내실화 추진, 적극적인 해외시장 개척을 통한 수출비중 확대 노력도 결실을 맺고 있다.
우리나라 최대 수출산업인 반도체는 세계반도체업계의 구조개편 과정에서 반대급부의 영향을 받아 수출이 급등세를 보였다. 작년 9월부터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회복세를 보이다가 올 3월부터 다시 완만한 하락세로 반전됐으나 수출 물량 확대로 수출실적은 10% 이상 늘었다. 최근 반도체 가격 하락속도는 다소 완화되고 있다. 이는 통상 상반기에는 계절적인 수요 감소로 가격이 하락되나 Y2K수요와 세계 반도체기업들의 구조조정 등의 영향으로 공급이 다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국내 통신기기업체들의 적극적인 해외시장 개척도 하나씩 결실을 맺고 있다. 국제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CDMA용 이동통신 단말기는 각 업체들의 수출계약 추진 노력과 함께 CDMA 이동통신서비스 제공 국가가 늘어나면서 수출을 주도, 큰 폭의 성장세를 보였다.
이에 따라 올 상반기 전자·정보통신산업의 수출은 작년동기보다 15.7% 성장한 219억6300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자산업진흥회는 추정하고 있다. 내수도 22.6% 늘어난 6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처럼 내수와 수출이 크게 늘면서 올 상반기 전자·정보통신산업 생산도 15.3% 늘어난 36조8150억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자원부가 잠정 집계한 올 상반기 국내 전체 수출실적이 663억6100만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국내 전체수출의 3분의 1을 전자·정보통신제품 수출이 담당한 것이다. 그만큼 전자·정보통신산업이 우리나라 수출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전자·정보통신산업의 성장세가 하반기에도 지속될 것인가.
전자업계는 하나같이 하반기 전자·정보통신산업이 호황을 지속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요인으로 우선 미국의 경기호조와 아시아 경제상황의 개선 등 국제 경제가 살아나고 있으며 소비·투자 등 국내 산업이 회복국면에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들고 있다. 물론 원화강세와 엔화약세, 미국의 금리인상 가능성, D램 가격 하락세, 위안화 평가 절하 가능성 등은 부정적으로 보는 요인들이다. 특히 8월부터 가전제품의 특별소비세 환원이라는 악재도 내수수요를 위축시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같은 낙관적인 전망은 벌써부터 감지되고 있다. 반도체 및 전자업체들은 최근 쇄도하는 수요에 대응, 여름 휴가철 휴무일수를 대폭 축소해 생산시설을 풀가동시키기로 했다. 모처럼 전자·정보통신산업 현장이 무더위를 잊고 증산에 열을 올리는 것이다. 세계적인 공급부족현상을 빚고 있는 TFT LCD생산업체들은 24시간 쉬지 않고 라인을 가동해도 수요를 감당치 못하는 형편이라는 것이다. 가전분야도 수요가 몰리고 있는 에어컨과 냉장고 등 일부품목의 라인 가동일수를 늘리고 있다.
한국전자산업진흥회는 올해 전자·정보통신산업의 수출이 기업의 수출확대 전략, 미국 경기 호조 지속, 일본 및 아시아 시장의 경기안정 및 고부가가치 제품의 수출지속으로 작년 대비 14.2% 증가한 441억5400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내수도 경기회복에 따른 수요증가 및 투자회복으로 22.6% 늘어난 12조781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생산도 금리 및 임금의 하향 안정화에 따른 생산비용 절감, 수출 및 내수 증가로 14.8% 신장한 74조8410억원에 달할 것이란 예측이다.
설비투자도 경기회복 기대속에 수출증가와 내수회복에 힘입어 5조7500억원에 달해 작년대비 12.5%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여기에는 우리 경제의 지표들이 과거 수치를 회복하고 있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원화 환율이 달러당 1100원대에서 안정되는가 하면 3년만기 회사채 수익률은 연 8.4%대로 오히려 IMF 이전보다 훨씬 낮은 수준을 유지, 기업의 금융비용 부담을 크게 줄여주고 있다. 내수가 살아나고 수출이 늘고 있는가 하면 외국인 투자도 줄을 이어 외환보유고가 사상 최대치인 600억달러 대를 기록하고 있다.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들의 국가 신용도 상향 조정에 따라 대외 신인도도 제고되고 기업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갖추고 수출시장 개척, 수출상품 개발 등 수출에 총력을 기울인 것도 밑바탕이 되고 있다.
민간 경제연구소와 정부출연연구소, 금융기관 등은 상반기보다 하반기 경기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다. 연구기관들은 아시아 경제의 회복과 반도체·컴퓨터 등 전자·정보통신제품의 수출증가에 힘입어 올 하반기 전체 수출이 작년 동기대비 5% 이상 증가해 연간 수출증가율이 1∼2%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가전은 디지털TV 등 디지털 가전제품을 중심으로 수출이 크게 늘고 내수도 수입선다변화제도 폐지에 따른 일본산제품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해 구매력이 부분적으로 회복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하반기 수입선다변화제도 완전 폐지에 따른 일본가전제품의 국내시장 잠식은 대형 TV나 디지털 가전제품 등 일부품목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국내 가전업체들이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춘 데다 일본 업체들이 국내에 유통망을 구축하는 데 일정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마이너스 13%성장을 기록했던 컴퓨터 수출도 노트북PC와 17인치 이상 모니터, 8기가 이상 대용량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40배속 이상 CD롬 드라이브 등 고성능 컴퓨터 주변기기를 중심으로 크게 늘고 내수의 경우 하반기에 공공부문 및 교육정보화 수요 증가와 인터넷 확산, 게임방 수요 급증 등 호재가 많다. 반도체는 생산물량의 확대로 가격이 하락하겠지만 PC시장의 안정적 성장, Y2K문제 관련 수요 증가, 전자상거래 활성화에 따른 수요증가 등의 요인으로 수출물량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통신기기의 경우도 상반기에 이어 수출확대와 함께 내수시장이 일정한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김병억기자 be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