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세트업체의 해외구매법인(IPO)들이 「부품 현지조달」 정책을 강화함에 따라 콘덴서·저항기 등 부품 공급업체들이 대책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부품업계에 따르면 올해들어 IPO들이 국내에서 공급받는 부품물량이 점차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자리를 현지업체나 국내의 현지법인들이 메우고 있는 것. 부품업체들은 그 정도가 아직 미미하지만 앞으로는 눈에 띄게 두드러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더해 국내 세트업체들이 해외생산을 강화하는 징후도 감지됐다. 실제로 한 세트업체의 경우 얼마 전 부품협력업체 관계자들을 해외공장으로 초청, 이같은 내용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업체가 부품업체들에 전달한 것은 오는 2003년까지 세트의 현지생산량을 3배 가량 늘리겠다는 계획. 이와 함께 「될 수 있으면 현지에서 부품을 조달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련의 상황에 비춰볼 때 세트업체들이 해외공장 생산량을 늘리든 그렇지 않든 부품의 현지수급은 대세를 형성할 것이라는 점이 부품업체들의 전망이다.
세트업체들의 이같은 정책은 해외 소비자들의 취향과 요구가 다양해지는 데 따른 현상으로 분석된다. 전세계적으로 신제품이 몇개월마다 하나씩 나오는 상황에서 세트업체들이 제때에 부품을 공급받지 못할 경우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 부품업체들의 설명이다. 가격 측면에서도 현지수급의 이점은 상당하다. 국내에서 부품을 조달할 경우 관세 등 눈에 보이는 추가비용만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부품업체. 부품업계는 세트업체들의 정책에 십분 공감하면서도 대책을 선뜻 마련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부품업체들이 세트업체들의 보조에 맞추는 길은 해외에 진출하는 것. 그러나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부품가격 하락으로 대부분의 업체들이 채산성을 맞추는 데만 급급할 뿐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몇몇 상황이 좋은 업체의 경우 현지공장을 설립하는 등 해외진출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업체들은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해외공장 건설을 엄두도 못내는 상황이다.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자금문제만이 아니다.
90년대 중반 해외에 진출한 여러 업체들이 고전을 거듭, 결국 해외공장을 포기했던 사례들도 결단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당시 여러업체들은 중국에 현지공장을 설립했다. 인건비 절감을 통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곧바로 IMF 한파가 닥쳤으며 이로 인한 피해는 아직까지 해당업체들을 괴롭히고 있다. 앞일을 예상하지 못한 결과다.
부품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 등 해외에 진출하는 것이 필요하긴 하다』면서도 『그러나 지금 단행하는 해외투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예상대로 성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국내 기반까지 위협당할 수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모험」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모든 것을 걸 수는 없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몇몇 업계 전문가들은 『다른 부품업체들과 같이 나가면 가능성이 있다』며 「동반진출」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단독투자 대신 합작투자는 그만큼 위험부담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세트업체들의 현지구매 강화정책에 부품업체들이 어느정도까지 발을 맞출 수 있을 것인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부품업체들이 세트업체들의 정책에 부응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사실이다.
<이일주기자 forextra@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