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가전시장을 지배하는 일본. 일본의 첨단 가전제품들이 내수시장에 아무런 장애없이 진출한다. 수입선다변화가 완전 해제됐기 때문이다. 이로써 우리 가전시장은 시장을 잠식하려는 일본 제품과 수성에 나선 국산제품의 치열한 승부다툼이 불가피하다. 수입선다변화제도의 완전 폐지에 따른 일본업체들의 내수시장 공략 전략과 이에 맞서는 우리나라 업체들의 대응전략, 또 양국 주요 업체들의 제품 및 유통, 서비스 등의 경쟁력을 비교해 본다.
<편집자>
국내 가전시장은 지난 1일부터 그동안 경쟁력 있는 일산 제품의 수입을 막아오던 수입선다변화제도가 완전 해제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이제 그동안 이 제도로 인해 수입이 거의 불가능했던 일본산 25인치 이상 TV와 VCR·전기밥솥·오디오·카메라 등이 아무런 제약없이 국내시장에서 유통될 수 있게 됐다. 특히 이들 품목이 가전제품 가운데서도 가장 늦게까지 수입선다변화 대상품목에 남아 있었던 것은 그동안 국산제품이 일본산 제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산업기반이나 기술력에서 뒤떨어져 있었기 때문으로 이번 수입선다변화의 완전 폐지는 우리 업계의 기술이나 산업기반을 평가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우리나라 TV시장은 연간 150만대로 그 규모가 연간 8000억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25인치 이상 제품 수요가 5000억원으로 시장점유율이 60%가 넘는다. 또 VCR시장은 3000억원, 오디오가 1500억원, 전기밥솥 1000억원, 카메라시장이 1000억원 규모다. 이번에 수입선다변화 해제로 일본 제품과 나눠야 할 시장은 모두 합쳐 1조5000억원이나 된다. 연간 6조원 규모인 가전시장의 25%가 이번 조치로 완전 개방된 것이다.
이러한 시장을 두고 일본 가전업체들은 지난해말부터 시장 공략 준비를 착실히 추진해왔다. 이들 업체는 이미 국내에 진출해 있는 지사나 대리점을 통해 수요특성은 물론 가격과 유통·AS·물류 등 마케팅 분석을 끝낸 상황이다. 국내에서 일산 가전제품을 수입판매하는 업체들은 수입선다변화가 해제되자마자 앞다퉈 제품 도입에 나서고 있다.
소니와 히타치제품을 수입하는 업체들이 30인치 이상 대형TV와 프로젝션TV, 또 올해 국내업체들이 내수시장에 내놓으면서 이슈가 되고 있는 평면TV 등 고가·고기능제품을 속속 들여오고 있고 JVC제품 수입회사들도 카스테레오, 미니디스크 플레이어, DVD 등 오디오 수입을 확대하고 있다.
이에 대한 업체들의 대응전략도 눈여겨 볼 만하다. 현재 국내 가전업체들은 이번 수입선다변화 해제에 대해 자신감과 위기감을 동시에 갖고 다각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LG전자나 삼성전자·대우전자 등 가전3사와 오디오업체들은 일본업체 진출형태나 시기 등과 관련, 예상가능한 시나리오를 구성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적극 대응한다는 전략을 세워 놓고 있다.
우선 국내업체들은 내수용 가전제품 수준이 중저가 상품에 치중하는 수출시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내수 모델에 적용된 기능이나 기술의 경우 일본제품과 견주어 손색이 없다는 점에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오히려 동급 제품의 경우 가격에서 유리하고 AS나 물류 등 지원분야에서 일본제품에 앞서기 때문에 쉽사리 시장을 내주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이들 업체는 일산제품의 공세에 대한 우려감이 없지 않다. 가전 및 오디오 업체들이 수입선다변화의 완전 해제를 우려하는 것은 바로 25인치 이상 컬러TV 등 몇가지 품목에선 일본제품을 압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걱정하는 바를 두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일본제품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어떻게 나타날까 하는 것이다. 소니 캠코더나 TV, JVC의 VCR와 오디오 등은 국내 소비자들이 선호해온 제품이다. 특히 조지루시의 일명 코끼리 밥통은 한때 일본과 동남아 여행자들의 인기를 독차지할 정도로 인기상품으로 꼽혀왔다. 수입선다변화가 해제돼 자유자재로 이들 제품의 구입이 가능해지면서 국내 소비자들의 반응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국산 제품의 기능이나 품질, 기술력에 대한 평가를 배제한 채 일본제품이니까 구매한다는 맹목적인 구매행태가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들이 적지않다.
더 나아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업계가 우려하는 것은 일본업체들이 이제 구색면에서도 국내 가전업계와 대등한 조건을 가진다는 점이다. 제품의 구색확보는 시장공략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다. 이를 통해 수요를 늘릴 수 있고 수요가 일정수준 이상 늘어나면 독자적인 유통망이나 AS채널 구축도 가능하게 된다.
수입선다변화제도가 완전 해제된 지 며칠 되지 않은 탓인지 현재까지 일본업체들의 직접 진출 징후는 없다. 물론 일본업체들의 직접진출을 통한 대대적인 공세가 단기간에 이뤄질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는 시장 공략에는 유통망과 AS, 물류체계 등 다양한 요소들이 갖춰져야 하는데 이는 단기간에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전국적인 유통망과 AS망을 갖추고 있는 일본업체는 수년전부터 지사가 진출해 있는 소니뿐이다.
하지만 국내업체와 일본업체간 시장경쟁은 마케팅전에서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에서 조만간 일본제품 수입업체들의 브랜드 알리기와 고가제품 중심의 특정수요 공략작전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업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미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제품 브랜드를 현지화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국내업체들의 맞대응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일산제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브랜드파워 높이기와 제품과 기술력에 대한 선입견을 불식시키기 위한 판촉, 홍보에 주력하면서 시장 지배력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수입선다변화 완전 해제는 유통시장 개방과 함께 우리나라 시장의 빗장을 푸는 중요한 계기임에는 틀림없다. 이는 곧 일본제품과 경쟁할 만한 품질이나 가격·마케팅활동을 펼치지 않고선 우리나라 기업들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여튼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일본 제품에 견줄 만한 제품을 개발해 당당히 시장을 지켜나가느냐 아니면 일본 제품들에 시장을 내주고 저가제품이나 판매하는 2류 전자업체로 남느냐 하는 결정만 남았다. 이것이 수입선다변화 해제로 일산제품의 자유로운 유입을 맞고 있는 우리나라 업체들의 숙제다.
<박주용기자 jy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