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연구단지를 노려라.」
코드분할다중접속장치(CDMA)·비동기전송방식(ATM)·반도체·디지털TV·생명공학 등 국가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개발한 첨단 연구개발 성과물들이 알게 모르게 새 나가고 있다.
LG정보통신 연구원 김모씨와 벤처기업 사장인 재미교포 K씨가 최근 「국가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사업」의 하나로 개발된 「콤팩트 PCIATM」기술과 차세대 휴대전화 「IMT2000」의 핵심기술 및 회로도 등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된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같이 연구개발 성과물들이 새 나가는 이유는 연구과제 관리체계가 허술하기 때문이다.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과기부·정통부·산자부 등 정부부처가 국책연구과제로 추진중인 연구과제에 대한 사전·사후관리가 형식에 그쳐 연구결과 성과물에 대한 기술이 유출되고 있다. 출연연구소들마다 연구소 보안규정상 국책연구과제의 경우 연구논문 발표시 사전에 보안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기관장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으나 대부분 해당 연구책임자와 소속연구부장이 형식적으로 보안성을 검토해 발표하도록 하는 것이 고작이다.
이에 따라 발표하지 않아야 될 사안까지 외부에 발표돼 애써 개발한 연구결과물을 경쟁국에 고스란히 넘겨주는 결과를 낳고 있다. 더구나 연구원 창업이 늘어나면서 정부예산을 투입해 개발된 연구성과물들이 거침없이 빠져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또 하나는 정부가 연구개발의 투명성 확보라는 점을 내세워 연구개발정보를 있는 그대로 공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고위 관계자는 『연구과제 공모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명분아래 연구주체들의 연구과제를 인터넷 등에 고스란히 공개해 국내 출연연·대학·산업체들의 연구정보를 외국정부나 기업에 송두리째 안겨다주고 있는 상황에서 당연한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전문가들의 경우 연구제목만 보아도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충분히 추정해낼 수 있다』고 지적하고 『경쟁국들이 연구과제를 파악, 우리보다 한단계 앞선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막대한 연구비를 투입한 국책연구과제의 연구성과물을 무력화시킴으로써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고도의 전략을 펼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대덕연구단지 출연연 고위 관계자는 『우리나라 연구산실인 대덕단지에 상주하고 있는 산업스파이만 적게 잡아도 100여명에 이르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모 연구소가 올해 추진하기로 한 중기국책연구개발 특정연구개발계획이 정부로부터 연구계획을 최종 승인받아 지원이 확정된 지 이틀도 되지 않아 경쟁국 과학기술부처의 관계자 손에 들어가 놀란 적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화학연구소 K 책임연구원은 『기업의 경우 연구개발과제 자체가 회사의 사활을 가름하는 극비사항인 것처럼 정부가 국가장래를 내다보고 추진하는 국책연구과제의 경우 일정부분 기밀을 유지해 연구과제조차 비밀에 부쳐야 할 필요가 있다』며 『연간 4000억여원이 투입되는 특정연구개발사업 중 비공개로 진행중인 과제가 과연 얼마나 되느냐』고 반문했다.
이와 관련, 국가정보원은 최근 과기부·정통부·산자부·환경부 등 관련부처 연구보안 실무자들을 불러 국가 차원의 과학기술 통합보안규정을 제정하는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과기부의 고위 관계자는 『국책연구과제의 경우 연구성과물에 대해 기밀을 유지하고 보안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는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연구과제 자체를 기밀로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창훈기자 ch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