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이후 국내기업들의 경영화두가 주주중시 경영과 투명경영으로 모아지고 있다. 주주의 권익과 경영의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자금조달의 원천인 주식시장에서 투자자들에게 외면을 당하기 때문이다.
주식 애널리스트들에 따르면 국내 상장기업들이 올해 계획하는 유상증자 규모는 무려 30조원. 증시가 직접금융시장으로서 본격 자리매김하는 신호가 아닐 수 없다. 주주중시·투명경영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런 마당에 투자자들의 호불호 평가는 기업생존과 직결되는 관건이 아닐 수 없다. 기업들이 기업투자자홍보(IR:Investor Relations)에 눈을 돌리게 된 배경은 바로 이런 이유다.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가의 비중은 20%대. 외국인 주주가 내국인 대주주보다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기업이 지난해말 기준으로 42개사에 이른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외국투자자들이 투자대상을 선정하는 주요 요인이 바로 기업의 IR활동. 국내 기업들이 IR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도 경영간섭이 심한 외국투자자들 때문이라는 것이 중평이다. 여기에 국내 기관투자자들도 투명경영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며 시민단체들의 소액주주 권리 운동도 강화되고 있다.
이미 올봄 정기 주주총회 당시 삼성전자·현대중공업·SK텔레콤 등 대기업들은 외국투자자와 소액주주들에게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재정경제부도 기업지배구조 개선작업에 착수, 주주들의 견제와 소수주주권 보호 등을 8월쯤 제도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IR는 한마디로 증시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수행하는 기업 홍보활동이다. 기업의 재무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신뢰도를 높이고 이를 통해 안정적인 주가 유지와 원활한 자금조달을 꾀하는 장기적으로 상시적 전략적 활동이다. 기업공개전이나 유상증자를 앞두고 투자유치를 위해 수행하는 일시적인 기업설명회나 투자설명회와는 차원이 다르다.
IR는 또 증시의 투자자 집단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일반대중이 대상인 PR(Public Relations)와도 구별된다. PR가 제품판촉이나 이미지 제고를 위해 좋은 점만을 부각시키는 데 반해 IR는 영업실적과 재무상태 등을 솔직히 공개함으로써 나쁜 점도 과감히 알리는 활동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또 기업이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실시한다는 점에서 법적 의무활동인 공시와도 구분된다.
국내에 IR가 처음 소개된 것은 지난 91년. 92년 자본시장 개방을 앞두고 외국투자자들이 IR를 요구하면서 국내 기업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이 IR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고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 것은 최근 IMF 위기에서 벗어나면서부터.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적극적인 IR활동에 나선 기업들이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최고경영자가 직접 기업설명회를 진행하는 등 IR활동을 진두지휘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금융권을 중심으로 외국 전문가들을 IR담당자로 영입했다는 소식도 잇따르고 있다. 전담팀을 구성한 기업들도 늘고 있다.
94년 LG전자를 시작으로 지난해 이후 삼성전자와 포항제철 등 10여개 기업이 전담팀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국민기업을 자처하는 한글과컴퓨터를 비롯해 비트컴퓨터와 터보테크 등 코스닥등록기업들도 IR활동에 적극적이다.
기업들이 IR활동으로 얻게 될 가장 큰 성과로는 역시 투명경영 기조에 의한 기업신뢰도 상승이라 할 수 있다. 지난해 일본 야마이치증권이 파산한 결정적인 이유에 대해 다수의 전문가들은 기업의 부실내용을 은폐하려한 데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주택은행이 부실자산 내역을 공개한 뒤 오히려 주가가 상승한 것은 투명경영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투자신탁회사를 경영하는 한 펀드매니저는 『경영내용의 은폐는 투자자들에게 필요없는 억측을 불러일으키며 결국 투자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라며 『장기적 시각에서 적극적인 IR가 기업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아직은 IR의 본격 개막을 거론하기에는 이르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도 투명경영에 대한 최고경영자들의 거부감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한 IR컨설턴트는 『IR에 대한 의지와 활동은 업체간에 편차가 심한 상황』이며 『외국 증시에 상장된 대기업들이 비교적 적극적인 편』이라고 전하고 있다.
또다른 IR컨설턴트도 『국내기업들의 IR는 기업설명회, 1 대 1 미팅, 재무정보를 요약한 자료집 제공 등 그때 그때 필요에 따라 하는 정도』라며 『투명경영을 통해 내재가치를 충분히 알리고 적정 주가를 유지하는 것은 경영권 보호차원에서도 오히려 기업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IR활성화를 통한 투명경영의 성패는 무엇보다도 최고경영자의 확고한 의지와 마인드 변화가 중요하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자신의 경영지분 확보를 위해 기업가치를 희생할 것인가, 자신의 지분을 희생하고 기업가치를 높일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는 것은 이제 시대에 걸맞지 않은 사고의 행태다. IR는 최고경영자들에게 새로운 기업가정신을 심어주는 데도 큰 몫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상범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