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모뎀업계의 화두는 아날로그 모뎀시장이 얼마 동안 지속될 것인가와 이를 대체할 디지털 모뎀시장이 언제쯤 본격적으로 형성될 것인지에 모아지고 있다.
지난 10여년간 PC사용자들에게 주요 통신수단으로 그 소임을 다해온 아날로그 모뎀이 이제 기술적 수명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화선으로 데이터정보를 보내는 아날로그 모뎀은 지난 87년 1200bps급 제품이 국내에 첫선을 보인 이후 거의 매년 전송속도를 2배씩 높여가며 소비자들에게 「모뎀 업그레이드」를 강요해왔다.
이러한 모뎀속도의 향상은 PC통신 사용자들에게 「컴퓨터기술은 무한히 진보한다」는 일종의 신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으나 97년 56Kbps급 모뎀 등장과 함께 전송속도 경쟁은 한계에 부딪혔다.
이론상 구리전화선으로 가능한 아날로그식 데이터전송의 최고속도는 56Kbps. 더 빠른 신형 모뎀을 만드는 것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해지자 모뎀업계는 원가절감을 위한 간이형 모뎀 개발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모뎀 기술자들은 기존 하드웨어 모뎀에서 부품을 하나씩 떼내고 소프트웨어 방식으로 대체하는 「진기명기」를 거듭하며 밤을 새웠고 이러한 저가 간이형 모뎀제품은 「윈모뎀」 「소프트모뎀」이라는 이름으로 모뎀시장을 석권해 나갔다.
그 결과 일부 내장형 모뎀카드의 가격은 장당 2만∼3만원대 수준으로까지 떨어졌고 오는 10월에는 염가판 소프트모뎀의 최종 버전으로 불리는 1만원대 모뎀라이저(MR)카드까지 등장해 아날로그 모뎀사업의 수익성을 한계수준으로 끌어내릴 것으로 보인다.
컴퓨터업계에서는 저가의 모뎀라이저카드가 모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의 수요를 잠식할 경우, 상당한 생산규모를 갖춘 모뎀업체가 아니고는 수익성을 맞추기 힘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국내 모뎀시장은 PC수출 호황과 맞물려 외관상 순조로운 성장을 지속하고 있으나, 모뎀업체들은 6개월 뒤의 사업전망에 대해 별다른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세기말적 불안감이 감도는 모뎀업계에서는 기존 아날로그 모뎀시장을 대체할 차세대 제품으로 비대칭 디지털가입자회선 「ADSL」 모뎀을 지목하고 있다.
미래의 고속인터넷 통신환경에서 종합정보통신망(ISDN)카드나 케이블모뎀 등 다른 경쟁제품도 적지 않지만 가격·전송속도·설치용이성 등에서 ADSL 모뎀과는 비교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ADSL 모뎀은 기존 구리전화선을 이용하므로 전국 어디서나 작동되는 범용성이 뛰어나 아날로그 모뎀을 이어갈 차세대 모뎀제품으로 충분한 가능성을 갖추고 있다.
이미 미국·독일·이탈리아·영국·싱가포르 등에서는 올초부터 ADSL 상용서비스를 개시했고 특히 유럽지역을 중심으로 급속히 보급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대도시 아파트단지를 중심으로 하나로통신의 ADSL 서비스지역이 점차 확산되고 있으며 한국통신은 오는 10월 ADSL 1만5000회선을 신설해 상용서비스에 나설 예정이다.
국내 ADSL 모뎀시장은 연말까지 10만대, 내년에는 최소 50만대가 보급되면서 대중화 시대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장밋빛 전망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ADSL 모뎀 개발은 기존 중소규모의 모뎀 전문업체보다는 자금·기술력 등에서 앞선 일부 대기업 위주로 추진되고 있어 전문업체들의 입지가 크게 약화될 전망이다.
모뎀업계에서는 내년 상반기쯤 간단한 구조의 ADSL 모뎀이 개발되고 제품가격이 내려가면 시장주도권이 다시 중소기업쪽으로 기울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섞인 예측도 내놓고 있기는 하다.
한 모뎀전문가는 빠른 것을 최고로 치는 국민성향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디지털 모뎀 보급계획이 예상보다 훨씬 앞당겨질 것이라고 장담하면서 『PC사용자에게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하던 아날로그 모뎀 통신환경은 3∼4년 내에 사라져 앞으로는 90년대 영화에서나 보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