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활동하는 한 벤처 컨설턴트가 최근 사무실을 방문해 한국에서 벤처투자에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필자는 미국에서의 벤처투자와 한국에서의 벤처투자가 다른 점을 세 가지 관점에서 설명했다.
먼저 미국과 한국은 투자자의 관점이 다르다고 말했다. 미국의 벤처 캐피털은 투자 대상 업체를 만나면 『당신들의 비즈니스 모델과 사업 전략은 무엇이냐, 매출을 창출할 수 있는 모델은 무엇이냐』고 먼저 물을 것이고, 한국의 벤처 캐피털은 『향후 5년간 예상 매출액과 추정 재무제표를 가져오라』고 할 것이다. 미국에서는 경제원칙에 충실하고 효율적인 시장을 대상으로 사업을 전개해야 하기 때문에 제품 개발, 목표시장, 시장 진입 등에 있어서 독창적인 전략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되고, 벤처 캐피털은 투자 대상 회사의 사업 전략에 근거해 시장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다.
반면에 한국 시장은 예측하기 힘들고, 사업 전략보다는 개인적인 로비나 인간관계에 따라 회사의 매출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사업자들도 사업 전략을 이야기하기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연줄을 총동원하면 매년 100억원 어치를 팔 수 있다』고 이야기하거나 『기술력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시장에서 성공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두 번째로 한국에서 투자를 잘 하려면 사장의 관상을 보는 방법부터 배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장의 관상(운명)이 곧 기업의 관상(운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미국 벤처기업 창업자의 대부분은 기업이 어느 정도에 이르면 외부에서 최고경영자(CEO)를 영입한다. 넷스케이프의 마크 안드레센이나 야후의 제리양은 기업 공개를 결정하는 순간 대주주 겸 최고기술경영자(CTO)로 바뀌었다. 그들이 사장 자리에서 물러난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데 자신들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다.
국내 벤처기업의 대부분은 「한번 사장은 영원한 사장」인 경우가 많다. 기업의 가치는 내가 사장 자리에 앉아 있는 경우에만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엔지니어로서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경영자는 회사가 어느 단계에 이르면 마케팅 전문가나 기업 경영 전문가를 영입하는 것이 회사의 발전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벤처기업 중에는 창업자 사장의 영업력이 약해 회사 성장이 2∼3년이 늦어지거나 시장에서 도태된 경우가 있다. 최첨단 벤처기업을 운영하면서 기업가 의식은 산업시대 사고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세 번째는 『한국 기업의 투명성은 아직도 세계적인 기준과는 큰 격차가 있으니 조심하라』고 충고를 했다. 국내 벤처기업의 투명성은 최근 획기적으로 개선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회계 처리를 할 때 편법을 사용하거나 영업과 관련된 접대 문화는 별로 개선된 것이 없다. 낮은 투명성은 기업의 자료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게 되고 투자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 된다.
외국인에게 이런 설명을 하면서 가슴이 답답해져옴을 느꼈다. 우리 벤처기업들이 과연 이러한 전략 부재, 나홀로 경영, 투명성 부재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21세기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최근 인터넷 기업들이 나스닥과 코스닥에서 각광받자 인터넷 관련 기업에 대한 「묻지마 투자」가 극성이라고 한다. 심지어는 사업 자체를 인터넷 사업으로 변경하거나 추가하는 경우도 있다. 과연 인터넷 기업에 투자하면서 사업 전략과 대상, 매출 창출 모델과 전략, 원가 및 투자 회수 전략 등에 대해서 조사하고 고민해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최근 필자가 상담한 인터넷 기업 중의 절반 이상이 시장에서 이길 수 없는 전략 안을 가지고 있었다. 사업전략 없이 시류에 따라 사업을 벌이고 시장에서 좋아하는 모습으로 포장하는 데 주력하는 기업이 성공할 수 있을지 지켜볼 따름이다.
<연병선 한국아이티벤처투자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