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춘수 유로E&S 대표
국내 업체들이 다른 나라에 제품을 수출하기 위해선 해당 국가의 제품안전과 관련된 각종 규격을 취득해야 한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관련 규격을 제정해 놓고 인증마크를 부착, 제품 안전성에 대한 내용을 소비자에게 알리게 하고 이를 위반한 제품은 판매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수출이 경제위기 돌파의 확실한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해외 규격에 대한 중소기업들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그러나 해외 규격에 대한 이해와 전문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은 자사 제품의 적용규격이나 인증절차를 잘 몰라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중소기업들은 대개 관련기관이나 규격컨설팅 전문업체의 도움을 받기 마련이다.
그러나 수출을 위해 해외 규격의 문을 두드리는 중소기업들을 접하다 보면 우려되는 부분이 많다. 우선 해당 규격에서 요구하는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고 개선을 지적하면 중소 제조업체 대부분은 어렵다며 고치기를 거부한다. 오히려 무조건 그대로 승인이 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한다.
규격이란 적정 품질을 위한 최소한의 요구사항이자 법에 규정된 기본사항이다. 때문에 그대로는 어렵다고 하면 제조자는 규격승인 절차를 포기하고 다른 기관으로 옮겨간다. 그리고 며칠 후 승인을 받아 수출한다고 한다. 이런 제조자들의 얘기는 사후에 문제만 발생하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다.
해외 규격과 그 규격인증이 사후에 어떤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포괄적 의미를 아는 전문가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해외 규격에 대한 잘못된 접근은 사후관리에 적발될 경우 상상도 못할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특히 그로 인한 피해자가 컨설팅기관이 아니라 제조자란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
중소기업을 바른길로 인도하지 못하는 규격 컨설팅기관들도 문제다. 제품이 규격에 적합한지를 제대로 따지지 않고 그저 빨리 승인만 따주면 된다는 식이나, 자사의 능력에 맞지 않는 부분까지도 무리하게 업무를 진행하는 것은 사후에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적지 않은 컨설팅업체들이 거의 전세계 규격을 다 처리할 수 있는 양 영업하고 있다.
규격은 제품을 해외에 수출하기 위해 거치는 단순한 통과의례가 아니다. 규격승인 절차는 개발을 다 끝내고 어쩔 수 없이 하는 과정이 아니라 제품개발의 연속선상에 있다. 성능 면에서 제 아무리 훌륭한 제품이라도 해당 국가의 규격을 받지 못하면 미개발 제품이며 수출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제조자는 제품을 개발하기 전에 반드시 규격 전문가들과 함께 기술사항을 먼저 면밀히 검토해 설계에 반영해야 한다. 설계단계에서부터 해외 규격에 부합하는 개발이 이루어지면 규격승인 과정에서 나타나는 많은 개선단계를 줄여 결국 규격승인시험 기간과 비용도 모두 절감할 수 있다.
규격 컨설팅업체들 역시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분야로 특화할 필요가 있다. 전문성을 키운다면 제조자들에게 좀더 적절하고 정확한 기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그래야만 중소 제조업체들이 컨설팅기관을 믿고 제대로 된 규격승인 작업이 이루어져 국산 제품의 품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해외 규격 인증은 결과보다 그 과정이 더 중요하다. 비록 규격획득이라는 결과는 같을지 몰라도 과정에 문제가 있고 없고는 사후에 엄청난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
특히 하나의 제품이 제대로 된 규격승인 절차를 밟고 안밟고는 국익과도 직결된다. 해외 시장에서는 특정 제품의 품질평가가 곧 한국산 제품에 대한 평가로 귀결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