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들이 제작비 절감이나 행사 후원 등 명목으로 광범위하게 운영하고 있는 「협찬」 행위와 간접 광고의 구분이 갈수록 모호해 지고 있다.
IMF 사태 이후 제작비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방송사들이 특정 업체로부터 경비·물품·장소 등을 협찬받고, 프로그램 중간에 특정 회사 이름이나 브랜드를 부각시키거나 프로그램 끝에 협찬 사실을 고지하는 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 방송사들의 「협찬」은 이벤트 행사·캠페인·프로그램 제작 등에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으며 점차 지능화되고 있다.
방송사들이 특정 업체로부터 일정액의 협찬금이나 물품 등을 제공받아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게 협찬 행위의 대표적인 형태지만, 인기 탤런트나 MC들이 특정 브랜드의 의상을 입거나 상품을 사용하는 모습을 프로그램 중간에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행위도 넓은 의미의 협찬 행위라고 볼 수 있다.
특정 단체나 기관에서 주최하는 행사를 방송사들이 프로그램으로 제작, 방송해 주는 대가로 협찬금을 받는 사례도 매우 빈번하다.
이같은 협찬 행위는 그간 지상파 방송사들이 제작비 절감을 위해서 일반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었으나 IMF 이후 케이블TV나 지역민방 등에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현행 방송법은 협찬에 관해 특별한 규제 조항을 두고 있지 않다. 다만 무분별한 협찬 행위의 확산과 부작용을 막기 위해 방송위원회가 「텔레비전 협찬고지 방송기준」과 「라디오 협찬고지방송 기준」을 마련, 시행하고 있다. 이 기준은 협찬 행위를 크게 「캠페인 협찬」 「행사 협찬」 「프로그램 협찬」 「프로그램내 협찬」으로 구분, 제한된 범위내에서 협찬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캠페인 협찬」의 경우 공공기관 및 공공단체에 한해 허용되고 있으며, 「행사 협찬」은 방송을 전제로 방송사가 주최 또는 주관하는 공익 행사에만 허용하고 있다. 「프로그램 협찬」은 공익성 대형 기획물이나 독립제작사가 제작한 기획물에 한해 허용하고 있으며, 「프로그램내 협찬」은 시청자에게 주는 시상품이나 장소·물품·정보 등 협찬에 한해 고지를 허용하고 있다. 협찬 고지시에는 횟수, 표현 등에 크게 제한을 받는다.
그러나 협찬 행위가 광범위하게 확산되면서 간접광고와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게 방송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현행 방송법은 방송사들이 프로그램내에 특정 회사의 이름이나 상품명을 부각시키는 행위를 간접광고로 분류해 제재 조치를 내리고 있으나, 「협찬」 행위에 대해선 별 제재 수단이 없는 상황이다. 다만 「협찬」행위가 간접 광고의 혐의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방송위원회가 해당 프로그램 제작자나 방송사에 경고 조치를 내리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방송계 전문가들은 협찬 행위의 지나친 활성화가 방송광고 시장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협찬 업체나 단체들은 협찬을 통해 거액의 광고비를 들이지 않고도 특정 행사를 홍보하거나 상품을 선전해 광고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특히 특정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급상승할 경우 협찬에 따른 반대 급부는 상상 이상으로 크다.
굳이 몇 천만원의 광고비를 들여 시청률이 가장 높은 시간대(SA급)에 광고를 할 필요없이 협찬금을 제공하거나 물품·장소 등을 지원하고 소기의 광고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방송계 일각에선 재정 상황이 열악한 지역 민방이나 케이블TV업계에는 협찬이나 간접 광고를 상당부분 허용해주는 게 바람직스럽다는 의견도 제시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 영화 제작자들이 특정 회사 브랜드를 부각시키는 조건으로 영화 제작비를 지원받는 사례가 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방송계 전문가들은 무분별하게 확산되고 있는 협찬 행위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선 보다 엄격한 법체계와 시행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와 관련, 현재 국회에 제출된 정부 여당의 통합 방송법(안)은 협찬고지에 관한 조항을 신설,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여당의 방송법안은 방송사업자들이 「타인으로부터 방송 프로그램의 제작에 직접적·간접적으로 필요한 경비·물품·용역·인력 또는 장소 등을 제공받고 그 타인의 명칭 또는 상호 등을 고지하는」 행위를 방송위원회 규칙이 정하는 범위내에서만 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도록 했다.
따라서 새로운 방송법이 시행되면 방송사들의 지나친 협찬 행위는 상당부분 제재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장길수기자 ks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