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특집-CPU> "64비트 전쟁"

인텔이 주도하는 「머세드(Merced)」냐, 반인텔 진영이냐.

 오는 2000년은 복합 명령어 처리(CISC)방식의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로 대변되는 인텔의 386프로세서가 첫 발표된 지 15년, 명령어 축약형컴퓨팅(RISC)방식의 아키텍처 기술이 본격 선보인 지 약 20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또한 인텔이 지난 94년 자사의 32비트 CISC기술과 HP의 새로운 64비트 RISC기술을 결합, 21세기 인터넷 비즈니스 시장을 겨냥한 차세대 CPU인 「IA­64」 아키텍처에 기반한 새로운 CPU를 선보이는 해이기도 하다.

 이에 대응해 IBM·모토롤러·애플컴퓨터 등 3개사가 제휴해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는 「파워PC칩」과 컴팩의 자회사인 디지털과 삼성전자가 공동으로 개발한 「알파칩」,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울트라 스파크」 등 CPU 역사상 최대의 속도인 1㎓ 제품이 양산되기도 한다.

 64비트 CPU는 서버·워크스테이션 등 중대형 컴퓨터를 겨냥한 차세대 시장으로 최근 전자상거래 등 인터넷 비즈니스 사업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높은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분야다.

 64비트 CPU시장은 인텔과 HP가 지난 94년부터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는 「IA­64」와 IBM·모토롤러·애플컴퓨터의 「파워PC칩」, 컴팩과 삼성전자의 「알파칩」,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울트라 스파크」, 실리콘그래픽스의 「밉스칩」 등으로 대변된다.

 이중 「IA­64」에 기반한 첫 제품인 「머세드」는 인텔과 HP가 공동개발에 착수한 지 5년여 만에 선보이는 것으로 업계 최대의 관심사다.

 인텔과 HP가 제휴해 차세대 CPU를 개발한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소식이었을 뿐만 아니라 CISC와 RISC기술을 대체한 새로운 아키텍처가 소개된다는 소식은 기존 64비트 리스크 CPU를 개발해 오던 업체에 의기의식을 불러 일으켰다.

 CISC와 RISC는 CPU 아키텍처(설계기술)를 의미한다.

 80년대까지는 가능한 한 많은 명령을 준비함으로써 프로그래머의 부담을 덜어주는 CISC(Complex Instruction Set Computer)위주로 CPU가 개발됐으나 80년대 이후에는 명령을 가능한 한 적게 해 개발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아키텍처인 RISC(Reduced Instruction Set Computer)가 CPU기술의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됐다.

 이러한 CPU기술 아키텍처는 표준 라이프사이클을 따르게 된다. 새로운 아키텍처는 초기에는 반도체 제조 및 구성기술 향상과 함께 급속한 성능개선을 이루지만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는 더이상의 발전을 멈춘 채 기술정체 현상에 머물게 된다.

 이미 CISC는 수천만대의 컴퓨터가 연결되고 수백만대의 서버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인터넷 비즈니스 시대에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인 기술이고 RISC기술 역시 10년 이내에는 기술적인 한계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같은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 인텔과 HP의 「IA­64」기술이고 이에 기반한 첫 CPU가 「머세드」다.

 「IA­64」는 인텔의 「IA­32」 프로세서와 HP의 「PA­RISC」기술이 결합돼 있으며 에픽(EPIC: Explicitly Parallel In

struction Set Computing) 이라는 차세대 CPU설계기술이 들어있다. EPIC의 주요 기술은 VLIW(Very Long Instruction Word)와 슈퍼패럴렐로 대변될 수 있다.

 슈퍼패럴렐은 기존 RISC칩이 하나의 사이클에 4개의 명령만을 실행하는 슈퍼스칼라인 데 비해 이를 8개나 16개 이상까지 명령을 실행할 수 있도록 컴파일러 부분을 개선한 것이다. 이 방식은 CPU내부의 복잡한 컨트롤러 부분을 소프트웨어로 대체, 칩 효율을 높임으로써 클록스피드를 높여 데이터 처리속도를 개선할 수 있다. 여기에 VLIW기술이 슈퍼패럴렐 기술을 지원, 병렬로 명령어가 처리되도록 인스트럭션 구조를 제공하고 여러 CPU를 동원, 일련의 명령어를 하나의 문장으로 인식함으로써 정지없이 처리할 수 있게 해준다.

 여기에 NT, 유닉스 등 기존 운용체계(OS)와 호환성을 갖추고 있고 제조 및 설계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는 특징까지 갖추고 있다.

 이같은 장점으로 일부 RISC CPU업체들은 자체 개발을 포기하고 인텔 진영에 합류키로 하는 등 인텔의 아성이 32비트에 이어 64비트까지 이어지는 듯 했다.

 그러나 올 들어 이같은 조류에 큰 변화가 일고 있다.

 「머세드」 개발이 당초 예상보다 크게 늦어지면서 인텔진영에 합류할 예정이던 업체들이 독자노선을 강화하고 있고 일부에서는 「머세드」가 「파워PC칩」 「울트라스파크」 「알파칩」 등과의 경쟁에서 밀려날 수도 있다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머세드」가 신속한 시장진입에 실패, 이들 제품의 성능이 머세드를 한발 앞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머세드가 800㎒ 이하의 클록 속도를 보유해 내년 중반 이후에 출시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경쟁업체 제품들은 이 시기에는 이미 1㎓ 클록 속도에 수 MB의 L1캐시를 내장한 CPU를 출시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HP도 「IA­64」에만 연연하지 않는다.

 HP의 제품개발 계획에는 「머세드」이후 제품인 「매킨리(McKinley)」 「디어필드(Deerfield)」 「매디슨(Madison)」 등에 대응한 「PA­8xxx」제품군이 포진하고 있다.

 지난해말 출시된 「PA8500」이 HP의 마지막 RISC칩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는 크게 벗어나는 것이다.

 HP는 최근 「PA­8500」을 자사의 초대형 유닉스 시스템인 「V2500」과 「N클래스」 「L클래스」 등에 탑재해 영업을 펼치고 있다.

 특히 이 칩을 비롯한 향후 출시될 「PA­8xxx」는 「머세드」를 비롯한 인텔제품과 핀투핀 방식의 호환성을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있다. 일단 「IA­64」 사업을 인텔과 지속하되 「머세드」를 비롯한 공동개발제품이 독자개발 제품보다 성능이 떨어질 경우 인텔과의 제휴관계를 마감하고 독자노선을 걷겠다는 복안이다.

 「PA­8600」의 경우 칩에 내장되는 L1캐시의 성능이 업계 최고인 1.5MB인 데다 클록 속도도 550㎒에 달해 「머세드」의 경쟁제품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여기에 한 때 인텔진영에 합류의사를 밝혔던 디지털사와 선마이크로시스템스가 독자 노선을 한층 강화, 최근 신제품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으며 IBM·모토롤러·애플컴퓨터 역시 1㎓ CPU를 내년 중반부터 생산할 예정이다.

 「파워PC칩」은 IBM의 유닉스 서버인 「RS­6000」 등 최상위 기종에 탑재되는 「RS64」계열과 3D그래픽 구현 등에 적용되는 중형급 서버용인 「604e」, 하위 기종에 탑재되는 「620」 계열 등으로 구성된다.

특히 IBM이 지난해부터 신제품에 적용하고 있는 구리칩 기술은 구리가 기존 알루미늄보다 53%가량 전기저항이 작아, 열 발생이 적고 이에 따라 집적도가 높아 최근 반도체 분야에서 떠오르고 있는 신기술이다.

 IBM은 구리를 이용한 첫 CPU인 「파워PC750」을 개발해 미국내 특허권을 보유하고 지난해에 애플사의 매킨토시 제품에 공급했으며 내년 중반에는 구리칩 기술과 실리콘 이중막 웨이퍼(Silicon On Insulator)기술을 적용한 1㎓ CPU를 선보일 계획이다.

 디지털과 삼성전자는 지난 달 667㎒ 알파칩인 「21264」를 발표한 데 이어 다음 달말과 연말에 각각 750㎒와 800㎒ 「21264칩」을 개발, 출시키로 하는 등 RISC CPU사업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또 내년 중반께는 1㎓의 처리속도를 갖는 제품을, 2001년엔 1.2∼1.4㎓ 버전을 각각 발표키로 하는 등 성능향상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들 칩은 주기판용으로 공급되는 것은 물론 컴팩의 「XP 1000」 등 다양한 워크스테이션 기종에도 탑재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컴팩의 알파칩 사업 육성 노력은 「와일드 파이어」라는 코드명의 멀티프로세서 알파서버 발표로 이어질 전망이다. 와일드 파이어는 16개의 알파칩을 탑재할 수 있는 확장성이 우수한 서버로 올 하반기에 발표될 예정인데 테라바이트 용량의 메모리와 200개의 PCI 채널을 갖게 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선마이크로시스템스는 서버 및 워크스테이션 시장을 겨냥한 s, i시리즈와 정보가전용인 e시리즈 등으로 구성된 「울트라 스파크」 군을 내세우고 있다.

 600㎒급 「울트라스파크 Ⅲ」를 최근 개발, 연말경에 출시할 예정이며 2000년 중반에는 1㎓, 2002년에는 1.5㎓를 능가하는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특히 선은 올 연말경에는 64비트 울트라 스파크의 코어를 인터넷을 통해 공개, 제품개발 단계에서는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고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라이선싱 사업도 펼칠 계획이다.

 64비트 CPU는 향후 인터넷 비즈니스 시대의 두뇌역할을 담당하는 분야로 관심이 한층 높아 지고 있으며 어느 업체가 주도권을 행사하며 시장을 선도할 것인지 주목되고 있다.

<김홍식기자 hs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