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기획-뉴스&밀레니엄> 커버스토리.. 재벌병 걸리면 "벤처"만 죽인다

 온 나라가 벤처드림에 빠졌다. 벤처기업 창업이 연구소 연구원들의 전유물이던 시대는 갔다. 대학생·회사원·퇴직자, 그리고 남녀노소 할것 없이 제2, 제3의 빌 게이츠를 꿈꾸며 창업 대열에 섰다. 이렇게 해서 중소기업청에 등록된 벤처기업 수는 올 상반기에 3000개를 돌파했다. 우선은 지난해 새정부 들어 IMF 조기극복 차원에서 정부가 앞장서 대대적으로 벤처기업육성책을 선전한 결과다.

 그러나 기업이 대내외적으로 벤처를 표방한다고 해서 모두 다 벤처기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창업자들 사이에서 「벤처기업가로 명함을 내밀지 못하면 팔불출」이라든가, 「사업에 관계없이 확인서만 받으면 벤처기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도는 것은 건전하고 생산적이어야 할 벤처문화를 멍들게 하는 독소가 아닐 수 없다. 지난달 감사원이 수조원대에 이르는 정부의 벤처지원자금이 기준 없이 유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적발해낸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계적인 경영환경의 지각변동은 벤처기업들이 창업만으로 그 자리에 안주하도록 놓아두지 않고 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은 최근에 화제를 몰고온 자신의 저서 「@생각의 속도」에서 『비즈니스는 다가올 10년 동안에 지난 50년보다 훨씬 더 큰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비즈니스의 기존 틀을 깨지 않고서는 전쟁터 같은 벤처세계에서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나아가 벤처기업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사고를 버리는 과감성이 그 첫번째 임무』라고 잘라 말했다

 국내 한 벤처기업가는 『20세기형 벤처비즈니스가 독특한 기술, 특화된 분야,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승부를 거는 형태였다면 21세기형은 네트워크형으로서 기업들 서로가 보완해줄 수 있는 구조로 결합해 더욱 큰 시너지 효과를 내는 다중 비즈니스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사전적 의미로 벤처는 재산이나 생명을 건 새로운 모험 또는 도전을 의미하는 말로 쓰인다. 과학기술 발전과 마케팅 고도화가 진전되면서 다가올 21세기의 벤처비즈니스에서는 누구도 가보지 않은 곳, 그리고 더 많은 위험요소가 도사리는 곳을 찾아나서는 노력과 끈기가 제1의 덕목으로 자리잡게 될 전망이다. 중소기업청의 한 관계자는 『노력과 끈기 없이 시류에 따라 변칙경영을 좇다 무너진 벤처기업이 한둘이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벤처비즈니스를 발굴 지원하는 창업투자사 관계자들도 『적지 않은 벤처기업가들이 노력과 끈기에 의한 기술개발보다는 고급 자동차와 번듯한 사무실 마련에 신경쓰는 경우가 많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벤처기업으로서 불필요한 재벌병이 벤처정신을 쓰러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진정한 벤처기업이 출현하지 못하는 이유로는 대다수 벤처비즈니스가 기술개발자 중심으로 이뤄져왔고 경영능력은 언제나 뒷전이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확하게는 경영이 뒷받침되지 못한다는 표현이 더 옳다. 여러가지 요인들이 작용했겠지만 기술자 출신의 벤처비즈니스맨들은 기술개발에서 마케팅과 상품화, 그리고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기업경영을 전담하는 번거로움과 수고로움에서 탈피하지 못해 왔다.

 반면 벤처비즈니스의 천국인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창업자가 기술자 출신인 경우 경영전문가를 영입하고, 마케팅전문가라면 기술자를 영입하는 식의 관행이 정착이 돼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벤처비즈니스 성공 확률이 높은 것은 바로 이처럼 계획적이고 전문적인 기업 경영이 따라줬기 때문이다.

 벤처기업의 절대 다수를 배출하고 있는 정보기술 분야의 경우 기술자들의 아이디어 수준과 개발능력은 한국과 미국이 거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기술과 아이디어를 상품화해 사용자나 소비자들의 평가를 받는 단계에서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한 벤처전문가가 『21세기형 벤처비즈니스의 성공은 분업과 협업이 조화를 이루는 것을 전제로 할 때만이 가능한 것』이라고 한 지적도 바로 이런 배경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한편 벤처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2대 요소는 역시 사람과 창의적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신속한 의사 결정, 타인과 협조하는 협동성, 개방적 사고를 기본 조건으로 하는 경영자 자질은 벤처비즈니스의 성공을 좌우하는 절대적 요소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경영자의 자질은 또한 「엉뚱하다」는 아이디어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벤처투자자들이 투자결정 과정에서 경영자의 자질을 최우선 고려대상으로 삼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 벤처 투자심사가는 벤처기업의 경영자가 보여주는 능력은 투자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설득력·의지·조직 장악력·사업 전략과 추진 방향 등 경영자의 태도 속에서 투자 강도가 결정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창의적 아이디어는 벤처비즈니스를 있게 하는 동기 그 자체다. 창의적 아이디어는 바로 모험정신의 소산이다. 모험은 전문적인 지식과 고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할 때 더욱 빛나고 성과가 크게 나타날 것임은 물론이다.

 자산가치보다는 사람과 창의적 아이디어가 평가받는 관행은 벤처비즈니스 차원을 넘어 앞으로 모든 기업분야에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온기홍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