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의 성공 뒤에는 의례적으로 「신화」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벤처의 성공사례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처를 자처하는 기업들의 등장은 끊이질 않고 있다. 새로운 천년을 코앞에 둔 지금 「벤처의 전성시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물론 성공을 꿈꾸는 벤처창업의 전성시대를 뜻한다.
성공신화를 꿈꾸는 곳은 벤처기업뿐만이 아니다. 성공한 벤처기업의 고수익을 나누고자 하는 투자집단도 있다. 이른바 벤처캐피털, 벤처기업의 탄생과 성장에 중요한 토양을 제공해주는 곳이다. 벤처캐피털들의 가장 어려운 작업은 무엇보다 난무하는 벤처기업들 속에서 가능성 있는 기업을 가려내는 일. 특히 인터넷 관련 벤처기업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이전의 가치관이나 패러다임에 의한 옥석가리기는 사실상 불가한 상황이 됐다.
옥석을 가리는 투자심사가들은 어떤 기준을 갖고 있을까. 심사기준이 중요한 것은 앞으로 벤처기업이 갖춰야 할 조건을 알아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벤처기업의 흐름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대상을 선정하는 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역시 사람. 기업을 경영할 대표의 자질을 투자의 제일조건으로 꼽고 있다는 말이다. 언뜻 당연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올 수 있지만 사실 벤처기업들 스스로는 이러한 기준을 뜻밖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대학생 벤처동아리의 한 회원은 『벤처를 창업해 성장시키는 데 80% 정도는 기술력이 좌우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일반적인데 실제 창투사를 만나보면 보유기술에 대해서는 10% 정도도 안 쳐준다』며 의아해 했다.
기술 지상주의는 이미 일반시장에서도 깨진 지 오래다. 성공을 위해서는 기술력보다는 사람의 의사결정에 의해 좌우되는 경영능력이 더 큰 요인이라는 것이 시장 법칙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물론 기술력을 전혀 무시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기술력에 가려 있던 다른 요인들에 눈길을 돌릴 필요가 있고 또 그렇게 가고 있다는 것이다.
삼부벤처캐피탈의 백승룡 차장은 『벤처기업이라 하면 그동안 하이테크산업에 집중되면서 인적 능력, 기술적 경쟁력이 주요 기준이었다』며 『이제는 문화산업이 부상하면서 「끼」랄까, 「엉뚱하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중요해졌다』고 말한다.
물론 다른 의견도 있다. 동원창업투자의 조래환 팀장은 『엉뚱지수(AQ:Absurd Quality)는 시간 선점의 효과일 뿐 사업의 성패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요소』라고 말한다. LG창업투자의 장만준 파트너는 『인터넷 벤처는 벤처 중의 벤처』라며 『사기꾼인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선구자인지는 누구도 모르는 상황이며 이러한 상황에서는 역시 사람을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AQ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관심은 역시 인터넷의 부상에 따른 것. 인터넷 기반 사업이 무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이제 벤처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기술적 차별성에 초점을 뒀던 기존의 기준이 변해 비즈니스 접근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도 중요한 선정기준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변함이 없는 것은 기술력이든 아이디어든 실제 추진주체인 대표의 마인드와 자질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김상범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