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어느날, 미 FBI의 수사관들이 미국 뉴욕에 있는 한 싸구려 잡지사에 들이닥쳤다. 잡지의 이름은 「어스타운딩 사이언스 픽션(Astounding Science Fiction)」. 당시 미국에서 발간되던 통속적인 SF잡지 중의 하나로, 대부분 유치한 그림의 표지와 싸구려 종이, 말초적인 오락, 소설 등으로 채워져 점잖은 대접을 못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혐의는 국가기밀 누설이었다. 당시 미군에서 극비리에 개발중이던 가공할 신무기가 그 잡지의 한 단편소설에 생생하게 묘사됐기 때문이다.
문제의 작품은 클리브 카트밀이란 작가가 쓴 단편 「데드라인」이었다. 이 작품에서 묘사된 가공할 신무기란 다름아닌 원자폭탄이었다. 그런데 이 소설 속에서는 전쟁 당사국들이 결국 원폭을 사용하지 않기로 선언한다.
원폭의 위력이 너무나도 대단해 인류에 큰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정부는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을 끌어모아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극비리에 원폭을 개발하던 중이었다. 그리고 그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언론매체에 그와 관련된 일체의 정보공개를 막았고, 심지어 과학잡지에서 학술적인 주제가 되는 일도 교묘하게 방지했다.
그러나 SF잡지는 아무런 통제나 공작도 취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었다. 「유치한 SF작가나 독자」는 신경쓸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핵무기에 대해 공개적으로 자유롭게 논의했던 사람들은 SF잡지와 그 독자들뿐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내용이 싸구려 SF잡지에 적나라하게 드러났으니 보안당국이 혼비백산한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당시 작가는 어디까지나 공공 도서관에서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물리학 이론서를 참고, 작품을 썼을 뿐 나머지는 오로지 작가의 상상력만으로 채운 것이다.
보안당국에서는 결국 사건이 순전히 우연의 일치, 아니 SF작가의 상상력에 기인한 필연적인 우연(?)임을 깨닫게 되었다. 반면 당시 SF독자들은 상당히 어깨가 으쓱해졌다고 한다.
사실 「데드라인」 이전에도 이미 핵무기나 원자력을 상세하게 묘사한 SF소설은 여럿 있었다. 핵무기가 전세계에 대량 확산되면서 딜레마에 빠지는 상황은 일찍이 1941년에 어떤 SF작가가 예언한 바 있고, 그보다 앞선 1940년에는 원자력 발전소의 노동자 문제를 다룬 작품이 나오기도 했다.
또 1942년 9월호 「어스타운딩 SF」에는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고를 다룬 「과민성(Nerves)」이라는 작품이 실렸는데, 이 해는 원자력 발전의 핵심기술인 핵분열 제어실험에 겨우 성공한 해다.
당시 그 잡지의 편집장이었던 존 캠벨은 오늘날 현대 SF의 기틀을 다진 위대한 편집자로 평가받고 있다. 스스로가 뛰어난 SF작가였던 캠벨은 MIT를 나온 수재였으며, 어릴 때부터 SF에 흠뻑 빠져 있다가 27세에 SF잡지사의 편집장이 되었다. 그는 그 뒤 과학과 문학의 수준높은 결합에 지대한 공헌을 세워 현대 SF의 수준을 크게 향상시켰다.
남들은 「유치한 싸구려」라고 평가절하해도 그는 꾸준히 SF의 질적 향상에 힘썼는데, 진짜 엉터리 작품들은 거절하고 과학적 논리를 탐구하는 진지한 작가들만 선별해 거듭 고쳐 쓰도록 수련을 시켰던 것이다.
그 결과 그의 밑에서 성장한 작가들은 훗날 SF의 초일류 작가군을 형성하게 된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작가가 「로봇」 「파운데이션」 등으로 유명한 아이작 아시모프다.
아무튼 원폭 예언사건은 SF작가들의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나타내는 좋은 본보기로 SF문학사에 한 에피소드로 전해지고 있다.
<박상준·과학해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