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영어와 국가 경쟁력

 90년대 초부터 국제화 노력의 일환으로 개설됐던 대학의 영어강의가 점차 폐강 또는 축소되고 있다는 보도를 얼마 전에 접했다.

 주요 12개 대학을 표본 조사한 결과 영어영문학 관련 과목을 제외한 일반 교과목을 대상으로 할 때 모 여자대학만 17개 교과목을 영어로 강의하고 있으며 7개 대학은 한자릿수 그리고 지방의 대표적인 4개 대학은 영어강의를 전혀 실시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대학들은 「국제경쟁력 강화」와 「세계적 수준의 대학」을 표방하고 학생들에게 영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대학당국·교수·학생 모두가 시행에 따르는 어려움으로 실행에 옮기는 데 소극적인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학생이 사회에 진출할 때가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대기업은 물론 대부분의 중소기업들도 영어능력을 필수적으로 요구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학생들은 별도로 영어에 막대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근래에 우리나라 민족문화 보존에 앞장서온 일부 대학에서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방안으로 다시금 교과목의 영어강좌 개설을 비롯한 다양한 영어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의 영어능력 향상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서 다행스러운 일이다.

 영국의 한 조사기관에 의하면 60억 세계 인구 중 영어 사용 인구는 각국에서 공용어로 사용되는 인구까지 포함하면 17억3000만명으로 인류 전체의 3분의 1에 가깝다고 한다.

 유럽연합(EU) 시민의 절반 이상이 별 어려움 없이 영어로 대화할 수 있으며, 영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구사하는 아시아인이 3억500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또한 아시아 대부분의 사업가들은 비즈니스 언어로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아시아 전체를 대상으로 영어가 통하는 수준을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가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다가오는 21세기는 「지식기반 정보시대」라고들 한다.

 이미 우리 주변에서 쉽게 알 수 있듯이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한 무형의 상품이 유형의 상품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

 노르웨이의 미래학자 스타이나 옵스타드는 앞으로 국가 경쟁력은 국민이 인터넷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얼마나 소화해내는가에 달려 있다고 단언한다. 우리에게 무한한 지식과 정보의 세계를 접하게 해주는 인터넷의 공용어는 영어다.

 오래 전 필자는 제자 한명을 데리고 미국 대학에 1년간 연구연가를 다녀온 적이 있다.

 평소 영어에 자신이 없었던 그 학생은 처음에 어눌하고 소극적이었지만 6개월 정도 지나 의사표현이 가능해지면서 잠재능력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1년이 지나 돌아올 때쯤 되어 영어에 자신감이 생기자 1년 전의 연구능력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월등한 차이를 보여주었다. 그 학생은 돌아와서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했으며 지금은 자기분야에서 확고한 위치를 자리잡고 있다. 그 뒤에도 몇몇 제자들로부터 같은 결과를 볼 수 있었다. 국제언어인 영어에 대한 능력이 자기분야의 능력향상은 물론 국제인으로서의 자신감을 갖는 데 매우 중요한 요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수년간 우리는 세계 속의 한국이 되어야 한다며 「세계화·국제화」를 기치로 삼아 노력해 왔다. KAIST도 여러 해 동안 21세기에 세계적 수준의 대학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다양한 국제화 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다. 지난 봄학기에는 KAIST에 개설되는 강좌의 약 15%인 64개 강좌를 영어로 개설했다.

 종강 후 학생 여론조사에 의하면 영어강좌에 대해 80%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번 가을학기에도 봄학기와 같은 수준의 강좌가 영어로 개설되고, 외국의 저명석학을 전임교수로 초빙, 그들로 하여금 직접 강좌를 담당케 함으로써 수준높은 과학기술 교육을 영어로 실천할 계획이며 점진적으로 이 부분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이제 우리는 세계 무대의 치열한 무한 경쟁을 이겨내고 선진국으로의 진입을 위한 노력을 더욱 기울여야 할 때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여러 가지 일 중에 영어를 극복하는 것이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데 직결된다는 생각을 해본다.

<최덕린 한국과학기술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