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직 기양금속 사장
도금은 모든 산업의 기초가 되는 분야다. 도금은 제품의 외관을 미려하게 하고 기능을 좌우할 뿐더러 수명을 연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우리 실정은 도금업을 공해업종의 대명사로 인식, 천하고 보잘 것 없는 「물장사」쯤으로 취급하고 있다. 도금 분야는 이제 거의 모두가 기피하는 3D업종이 돼버렸다. 세트업체들이 지금도 도금공장을 도금집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그 현실이 잘 나타나 있다.
그렇지만 도금 표면처리는 모든 산업에서 다양한 용도로 쓰이고 있다. 전자제품을 비롯해 자동차·선박·기차 등 거의 모든 제품에는 도금 표면처리 공정이 들어 있다.
특히 전자통신산업에서 도금은 제품의 기능과 미려한 컬러, 내구성 등에서 마무리 품질을 좌우하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한다.
도금 표면처리가 잘되어야 모든 기능에 완벽을 기할 수 있다. 그것이 잘되어 있지 않으면 10년 쓸 수 있는 제품을 1년도 못쓰고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한 도금을 세트업체에서는 어떻게 관리하고 있을까. 몇몇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도금규격조차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거의 대부분의 세트업체들은 도금규격이라는 게 아예 없는 실정이다. 그저 아연도금(천연색·백색)·니켈도금·금도금·은도금·동도금 등이 도금규격의 전부다. 예를 들어 아연도금이면 두께는 몇 마이크로미터로 하고 내식성은 몇 시간 정도는 돼야 한다는 등의 구체적인 규격이 정해져 도금공장에까지 내려와야 한다.
이런 기초적인 규격도 없이 도금공장에서 무슨 규격에 맞는 도금을 할 수 있을까. 그렇다 보니 그저 적당히 싼 가격으로 도금을 해주면 그만인 것이 현실이다. 수많은 대기업 연구원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다른 것은 다 자신이 있는데 표면처리 도금 때문에 큰일이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걸 볼 수 있다.
세트업체가 새로운 제품을 설계할 때 도금 관련 규격을 제정하고 전문분야 종사자들과 상의한 후 설계한다면 불필요한 규격으로 인한 원가 상승이나 도금공장과의 마찰을 줄일 수 있을 것이고, 기능과 규격에 맞는 양질의 도금을 얻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우리나라 도금산업을 낙후시키고 도금공장이 아닌 도금집으로 전락시킨 사람이 과연 누구일까. 바로 세트업체 또는 연구원들이 큰 몫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세트업체의 구매팀장만 바뀌어도 불안한 것이 도금공장 사장이다. 언제 가격을 내릴지, 거래중단 통보를 받을지 불안한 것이 도금공장의 현실이다.
세트업체에서 도금규격을 제정, 1·2차 및 최종 도금공정까지 관리하고 지도했더라면 우리나라 도금공업도 많은 발전을 했을 것이고, 도금 때문에 클레임이 걸리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우리나라 도금공업 기술 수준도 현재 일부 기업의 경우 선진국과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해 있다. 이제 제품의 특징에 맞는 기능도금(초내식성·초전도성·초내마모성)을 세트업체와 공동으로 개발하고 지도할 때 선진국에 버금가는 도금산업의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 아울러 빨리빨리 하면 된다는 세트업체의 구태의연한 인식도 바뀌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