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기획-뉴스&밀레니엄> 커버스토리.. 다국적기업 "지킬"인가 "하이드"인가

"대표주자" 한국IBM

 21세기는 국경 없는 글로벌시대다. 기업활동은 정보기술의 발달로 초를 다툴 만큼 바쁘게 펼쳐질 것이다. 당연히 다국적기업들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할 때다. 이런 관점에서 질문 하나를 던져본다. 『한국내 다국적기업을 대표하는 한국IBM은 한국기업인가, 외국기업인가.』

 한국인들 사이에는 우선 지난 수십년간 다국적기업을 보아온 고정된 인식의 틀이 하나 있다. 「내가 버는 것은 선(善)이요, 남이 벌어가는 것은 악(惡)이다」라는 이분법 논리다. 한국IBM의 사람들과 한국IBM을 잘 아는 사람들은 지난 1967년 설립이후 30여년 동안 한국IBM의 기업활동은 철저하게 이 틀속에 갇혀버림으로써 공과를 제대로 평가받을 겨를조차 없었다고 아쉬워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소연하면서도 그들은 큰 소리를 내어 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한국IBM은 한국인의 뇌리 속에 아직도 여전히 과실송금(果實送金)을 일삼는 다국적기업의 대표주자로 자리잡고 있으므로. 이런 점에서 한국IBM은 지난 30여년 동안 국내 정보기술 산업분야 개척자로서 항상 첫손에 꼽히면서도 동시에 다국적기업의 한국내 전초기지라는 곱지 않은 시선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었던 기업의 전형으로 통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 30여년 동안 한국IBM의 기업 연표는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국내 정보산업분야의 역사에 매번 첫번째를 장식하곤 했다. 67년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에 설치된 「IBM 1401」은 국내 도입 컴퓨터 1호였다. 70년대 이후 공공·금융·제조·서비스·교육 등 전분야에 걸쳐 이뤄진 전산화가 한국IBM이 공급하는 컴퓨터와 기술을 통해 이뤄졌다. 그리고 한국경제와 사회는 이렇게 공급된 컴퓨터와 기술, 그리고 잘 훈련돼 배출된 인력을 통해 엄청난 산업발전과 고용창출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한국IBM이 한때 한국의 50대 수출기업으로 선정됐고 정보산업분야에서 수출을 가장 많이 한 기업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려 드는 사람은 아직도 흔치 않다. 지난해의 경우 한국IBM이 수출한 국산 컴퓨터 부품은 매출액의 2배가 넘는 약 10억달러. 82년 국제기술구매사무소(IPO) 설립을 통해 국내 기업들로부터 관련부품을 구매해서 전세계 IBM현지법인에 공급해주는 방식의 수출전략은 국내 산업발전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한국IBM은 이와 함께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에도 나름대로의 노력을 기울였다. 국내 학자들에 대한 웟슨연구소 장기연수프로그램 지원, 고급인력의 양성과 배출, 한글정보화, 전통 문화보존과 다양한 문화활동에 대한 지원, 선진 경영기법의 전수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한국IBM의 기업활동은 또한 한국 기업들의 다국적화, 혹은 세계화에도 큰 교훈을 주고 있다. 90년대 이후 삼성과 LG가 세계화를 외치며 수억∼수십억달러를 투자하고도 경영에 실패한 AST리서치와 제니스 등과 달리 한국IBM이 지난 87년 합작투자했던 삼성데이타시스템(현 삼성SDS) 등 10여개 투자기업들이 대부분 견실한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은 좋은 대조가 아닐 수 없다.

 기업활동은 기본적으로 이윤추구를 가장 큰 목적으로 삼고 그에 걸맞은 투자를 한다. 정당한 투자를 전제로 했을 때 기업이 얼마나 많은 이윤을 얻어갔느냐는 것은 이제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기업의 역할과 임무에 충실했는가를 따지는 기업시민정신에 있다. 이윤추구와 동시에 새로운 고용과 산업연관 효과를 창출하는 것, 나아가서는 국가와 사회발전을 위해 일정 부분의 이윤을 환원시키는 것이 모두 기업시민정신의 발로다. 기업의 투자가 장기적이고 근본적이어야 한다는 지적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서 일 것이다.

 다국적기업들의 평가 잣대는 이제 기업시민으로서의 충실도가 돼야 한다. 현지화에 대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가, 현지 국가의 발전과 국익에 보탬이 됐는가를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진정한 칭찬과 격려는 그들의 재투자를 촉진할 수 있는 것이며 다국적기업을 불러 들인 진정한 효과를 극대화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제 질문에 바로 답할 차례다. 한국IBM이 국내기업인지 외국기업인지는 기업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타인에게는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하면서 자신에게는 지나치게 아량을 베풀었던 것은 아닌지, IMF 한파는 결국 스스로에게 더 엄격하지 못했던 우리들이 자초한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볼 때다. 미국의 「트리뷴」지는 최근 한국을 위기극복의 모범으로 꼽았다. 한국은 위기 덕분에 우물안 개구리인 「주식회사 한국(Korea Inc.)」을 해체하고 세계화된 「다국적기업 한국(Korea International)」으로 거듭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한국인들에게 다국적기업의 진짜 의미와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다.

 세계 12위의 무역대국인 한국의 경제는 대외 무역의존도가 80%에 이를 정도로 이미 세계경제에 깊숙히 편입돼 있다. 우리 것이 거의 없던 결핍시대엔 반외세 민족감정이 필요했을 수도 있지만 시대의 변화와 현실 파악이 절대 필요한 시점이 된 것이다.

<김상범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