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소재하는 대표적인 다국적기업 한국IBM은 기업 역사 32년이라는 세월 동안 어떤 공과를 남겼을까. 한마디로 한국IBM의 32년은 정보기술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기술과 산업발전의 개척자 기업시민으로서 지역사회의 동반자로 함축할 수 있다.
한국IBM은 60∼80년대 컴퓨터를 가장 많이 판매한 것 이면에 국가적인 정보인프라 구축과 정보화를 앞당기는 데 선구자 역할을 했고 국내에 선진 첨단 정보기술을 도입해 국내 기업들의 기업경쟁력을 제고하는 데 이바지했다.
한국IBM은 이를 위해 컴퓨터시스템과 애플리케이션 및 기술지원 활동을 활발히 펼쳤다. 서울대와 공동으로 자연언어처리연구소를 개소했고, 시스템공학연구소(SERI) 조직내에 시스템엔지니어링센터(SEC)를 설립해 수백만달러 규모의 컴퓨터장비와 소프트웨어를 무상 기증하기도 했다. SEC프로젝트를 통해 한국IBM은 200명의 고급 엔지니어들을 미국에 연수시켜 SERI로 하여금 4000여명의 정보기술 전문가를 양성하여 배출토록 하기도 했다. 91년에는 한글정보처리 등 고난도 기술개발을 전담하는 국내 최초의 민간 소프트웨어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이 연구소는 미국 본사가 아시아지역의 몫으로 할당한 것을 한국IBM이 서울에 유치한 것이었다.
지난해에는 기업내 전산망을 중앙관리하는 티볼리 테스트센터를 한국에 유치, 국내 소프트웨어 개발 및 테스트기법 증진에 기여했다. 특히 중소기업 리엔지니어링을 돕기 위해 올해 중 전국 8개 도시에 설립되는 지원센터에 190억원 상당의 전산장비와 전문인력을 무상 지원하고 있다.
한국IBM은 또한 이 기간 동안 잘 훈련된 정통 IBM맨들을 국내 정보기술 분야에 배출, 한국 기업들의 국제화와 선진화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현재 정보기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IBM 출신 기업창업자나 최고경영자는 저명인사급만 50여명. 그리고 부장급 이상 고급간부는 500여명이나 된다. 가히 IT전문가 사관학교라는 평을 들을만하다. 여기에 지난 72년부터 매년 국내 과학기술자·대학교수 등을 미국 본사의 <&07471>슨연구소에 파견해 첨단 기술을 습득토록 지원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 프로그램에 의거해서 장·단기 연수를 다녀온 국내 학자는 박사급만 100여명에 달하고 있다. 한국IBM이 배출한 대표적인 최고경영자들로는 강성욱(컴팩코리아)·김광원(한국인포믹스)·김지문(한국사이베이스)·이상일(시퀀트코리아)·김익래(다우기술)·김영학(평창정보통신)·심동희(코아정보통신)·오태동(메인라인)·김이숙(이코퍼레이션)·최해원(SAP코리아)씨 등을 비롯, 이제는 현직에서 물러난 김원국(한국썬)·김재민(마이크로소프트)씨 등이 있다. 다른 분야에서는 서치영(한국담배인삼공사 사장)씨 등이 있다. <&07471>슨연구소 연수 프로그램을 거친 이들로는 김길창·김진형·좌경룡(이상 KAIST 교수)·이기준·최양희·고건(이상 서울대 교수)·박승규(아주대 교수)·박찬익(포항공과대 교수)·이범천(전 큐닉스 회장)씨 등이 있다.
한국IBM은 또 지난 82년 국제구매사무소를 설립, 모니터 등 컴퓨터관련 부품·주변기기를 미국 본사에 대량 수출하기 시작해 88년 1억불 수출탑을 수상하는 등 무역수지 개선에 크게 이바지했다. 최근 들어 지난 3년 동안에는 한국IBM 수입실적의 약 7배에 달하는 30억달러 규모의 한국산 제품을 미국IBM이 구매해 가도록 했다.
한국IBM의 공과를 평가하는 데 있어 간과할 수 없는 부문이 한국의 전통문화 보존 지원, 장애인을 위한 사회활동이다. 지난 89년 「뿌리깊은 나무」와 함께 「한반도의 슬픈소리」 및 「산조전집」에 이어 「판소리 다섯마당」을 완성했다. 90년에는 국내 굴지의 재벌들이 모두 외면한 한국의 세계적인 지휘자인 정명훈씨와 프랑스 국립 바스티유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을 성사시켜 안팎으로 주목을 받았다.
장애인봉사 분야에도 큰 관심을 보여 각종 이벤트 후원과 함께 자원봉사를 벌여오고 있다. 91년에는 국내 기업들이 수익성을 이유로 기피한 점자 번역시스템 개발을 후원했다. 75년 이후 대학 전산관련 학과 및 장애인·불우학생 300여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했다. 이외에도 88년 서울올림픽과 장애자올림픽의 공식 후원사로서 컴퓨터장비와 정보처리기술 및 인력을 지원했다.
<온기홍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