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고산지대에 사는 새가 있었다. 이 새는 낮에는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지저귀고 놀다가 밤이 되면 살을 에는 듯한 바람에 몸을 떨었다. 동이 트면 둥지를 틀어야지 하고 밤새 생각하지만 해가 솟으면 그같은 생각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그래서 그 새는 끝내 둥지를 틀지 못했다고 한다. 러시아의 남부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에 있는 코카서스 지방에 전해져 내려오는 「망각의 새」라는 전설이다.
우리는 거의 매년 이맘때면 물난리를 겪는다. 적지 않은 인명을 잃고 수십만 채의 가옥이 흙탕물에 잠기며 농작물과 가축이 유실된다.
산업시설도 피해를 보긴 마찬가지다. 물이 빠지면 침수됐던 가재도구를 챙기고 자동차·가전제품 등을 수리하는 것도 낯설지 않다. 열심히 가꾸고 쌓아올린 것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다는 것은 참혹한 일이다.
올해도 이러한 모습은 거의 예년과 마찬가지다. 1년 강수량의 70% 가까운 엄청난 빗물이 하루이틀 사이에 쏟아졌고 태풍까지 겹쳤으니 가히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천재지변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침수로 인해 수해를 입은 지역이 거의 일정한 것을 보면 꼭 천재지변 탓으로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 사전에 대비만 했더라면 피해규모를 훨씬 줄일 수 있었다는 지적이 항상 뒤따른다. 수마가 할퀴고 간 뒤에 민원(民怨)이 하늘을 찌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많은 비가 쏟아지는 원인이 라니냐에 기인한 집중호우든 아니면 태풍이든, 그 결과가 천재지변이건 인재건 그것은 어쩌면 부차적인 문제일지도 모른다.
풍수해로부터 소중한 인명이나 농경지·산업시설·가재도구 등을 어떻게 하면 지킬 수 있을지 하는 점이 더 중요한 일이다.
비가 많이 오면 그치기만을 바라고, 바람이 불면 잦아지기만을 기대하는 것은 인간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동물의 모습에 가깝다.
우리가 매년 거의 동일한 형태의 물난리를 겪을 수밖에 없다면 한갓 미물인 망각의 새와 다를 바 그 무엇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