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초점> "가상대학" 개선할 여지 많다.

 인터넷의 장점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지구촌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 공통의 관심사를 놓고 토론을 벌이는 국제 학술대회에 참가해본 사람이라면 인터넷의 가공할 만한 위력에 새삼 놀라게 된다. 가상대학은 인터넷의 이러한 장점을 대학교육에 접목시킨 것으로 최근 국내 대학들 사이에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현재 학교 강의실 대신 인터넷 가상공간에서 수업을 하는 「사이버 강의」를 도입한 대학은 전국적으로 70여개에 달하며 해당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최근 대학가의 분위기를 보면 사이버 강의를 서둘러 도입하지 않으면 앞으로 2, 3류 학교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까지 느껴진다.

 그러나 서둘러 도입한 사이버 강의가 부족한 컴퓨터 시설에다 강의부담까지 더해 학생과 교수 모두에게 큰 불편을 안겨주는 사례도 늘어나 이에 대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5일 연세대 중앙도서관에서 만난 김현경씨(사회학과)는 『집에서 모뎀을 사용해 접속하면 진행이 더디기 때문에 네트워크가 설치된 교내에서 수업을 들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는데다 학교내의 컴퓨터 시설이 부족해 30분 이상 기다리기 일쑤』라며 지난 학기에 인터넷으로 「가족사회학」을 수강할 때 겪었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또 연세대 이모 교수(교육학과)는 『사이버 강의에서는 100명의 학생이 질문하면 꼬박 100번 모두 답변해야 하는 등 일반 강의보다 2∼3배의 시간과 노력이 든다』고 설명했다.

 일반 강의는 한 학생에게 설명하면 다른 학생들도 같이 듣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나 사이버 공간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하고, 더욱이 컴퓨터에 접속해 단순히 자료만 보고 마는 것이라면 강의의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다. 학생들은 전산실 컴퓨터나 학교 앞 PC방 등에서 줄을 서야 하고 교수들은 일반 강의보다 2∼3배 품이 든다며 울상이다.

 부산대 조환규 교수(정보컴퓨터공학부)는 『대학이 강의실 부족을 해결할 수단쯤으로 사이버 강의를 생각하는 게 문제』라며 『시스템 확충 등 기본투자를 소홀히 한 채 강의를 운영해 수강생들이 학교 밖 PC방을 찾지 않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3월 학기에 6개 사이버 강좌를 개설해 1000여명의 학생들이 수강했던 서울대의 경우에도 교내 컴퓨터 보급률은 3명에 1대 정도에 불과하다. 이화여대 이혜은씨(사회생활학과)는 『집에서 강의 접속을 시도하다 모든 자료를 날리는 등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며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편리하게 수강할 수 있다는 사이버 강의의 장점이 무색하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교수들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 사이버 강의는 지속적으로 정보 업데이트를 해야 하는데 이는 교수 입장에서 보면 매우 과중한 부담이다. 올해 57개 사이버 강의를 개설한 이화여대의 전산원 관계자는 『대학이 정책적 필요성 때문에 정작 사이버 강의가 효과적이지 않은 과목까지 인터넷 강의를 실시하거나 과목편성이 주먹구구식일 경우도 많다』며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에 맞는 학습내용 개발과 제도정비, 기반시설 구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사이버 강의가 모두 부실하게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동국대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개설한 사이버 작문 강좌에는 500여명이 넘는 학생이 수강했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도 강의실 수업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가상수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동국대가 시행하는 사이버 작문 강좌의 특징은 사회학과·연극영화과·애니메이션학과·국문과 등 4개 과 교수들이 참여하고 또 학생들도 5명씩 조를 짜서 수업을 하기 때문에 일 대 일 글쓰기 지도가 가능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수강생들이 매주 주제에 맞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면 다른 학생들이 그 글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인다. 물론 최종적으로는 교수가 학생의 글을 읽고 잘못된 부분을 고쳐주고 조언한다. 교정부호, 심지어 마침표까지 꼼꼼히 지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수업과 비교했을 때 학습효과가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연세대 사이버교육지원센터의 김형철 교수(철학과)는 『논쟁과 시사문제 등에 대한 토론이 많은 인문·사회과학 강의는 인터넷으로 해도 별 지장이 없지만 실험과 실습이 많은 이공계 과목을 가상공간에서 가르치는 것은 현재 우리나라 대학들의 열악한 컴퓨터 환경을 고려할 때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고 평가했다.

 연세대는 1학기에 인터넷 가상공간에서 실시한 22개 사이버 강좌가 대부분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하고 오는 9월부터 시작하는 2학기에는 강좌 수를 60개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그러나 반도체 회로 설계 등 이공계 과목을 인터넷에서 가르치려면 우선 대학의 시청각 강의실을 대폭 확충하는 것은 물론 학교와 학생들의 집을 연결하는 컴퓨터 통신 환경도 획기적으로 개선한 후에야 시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상대학의 건설은 최근 대학가에서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겨우 걸음마를 마친 정도에 불과하다는 느낌이다.

<서기선기자 ks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