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글 긴생각> 가상대학의 이상과 현실

 지금 대학에서는 정보화와 관련해 열린 강의실, 가상대학, 디지털 도서관과 같은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또 교육 당국은 앞으로 많은 재원을 들여 가상대학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계획을 추진중이라고 한다.

 가상대학에 다니는 대학생은 집에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언제든지 강의를 들을 수 있고, 강사들 역시 편한 시간대에 편한 방식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지금의 비좁은 강의실 교육과는 다르게 서버 컴퓨터의 능력만 뒷받침해 준다면 수백 명이 몰려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이런 가상강의야말로 대형 강의실에서 마이크에 악을 써가며 소리를 질러본 강사에게는 더 바랄 수 없이 좋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가상대학이 지향하는 바가 과연 제시된 방식으로 우리 환경에서 달성될 수 있는가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 발표된 두 가지 보고서는 이러한 우리들의 가상대학에 대해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한 보고서는 지금의 가상대학(또는 사이버교육)은 경제적인 차이로 인한 계층간의 갈등을 가속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연 7만 달러 정도의 소득을 가진 계층의 4분의 3은 가상교육을 받기에 충분한 컴퓨팅 환경을 가지고 있지만 연 2만 달러 내외 소득의 가정 중 4분의 1은 이러한 새로운 환경에 전혀 대처할 수 없는 상태에서 만일 가상교육이 보편화된다면 지금의 공교육기관(공립 중·고등학교)이 주는 혜택을 빈곤층은 더 이상 누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이버 교육이 계층간의 차이를 줄이고 거리와 시간적인 공간을 없애겠다는 초기의 취지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고려가 없다면 많이 퇴색될 것이 분명하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원격교육의 혜택을 누구보다도 먼저 받아야 할 농촌의 아이들이야말로 컴퓨터의 혜택으로부터 가장 떨어져 있다. 이전에 몇몇 통신회사에서 전시용 행사로 산간벽지 학생들에게도 사이버교육으로 도시와 같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선전했지만 사용되고 있는지는 극히 의문스럽다.

 두 번째 보고서는 지금의 가상교육은 전체적인 관점에서 재평가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개별과목에서의 성과에 비해 전체 가상대학에 입학해 중도 탈락하는 수는 보통의 대학을 그만두는 경우보다 20배 이상 많다는 사실을 새롭게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앞으로 세상이 보다 지식중심, 특히 남들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창의적인 생각이 삶의 중요한 자산이 될 시기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이 무덤덤하고 지극히 평균적이며 교양 중심의 사이버대학이 아니라 일 대 일, 개인교습 형식의 교육이 더욱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제시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보고서를 통해 국내 가상대학 정책이 기본철학부터 잘못 설계됐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먼저 지금과 같이 전통적인 교과목, 전통적인 교육목표를 수정하지 않은 채 이를 사이버미디어에 실어서 교육하는 것이 사이버대학의 목표라고 생각하는 관료들의 어설픈 정보화 시각을 수정해야 한다.

 특히 사이버대학의 확충에 투자하고자 하는 전략은 수정돼야 한다. 대학은 단순히 학생이 교수로부터 지식을 전달받는 장소가 아니라 학생간의 교류와 상호작용을 배우는 곳인데 사이버대학은 이러한 학생경험(Student Experience)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가상대학에서 실시간의 질문은 거의 불가능하다. 반나절 걸려서 전자우편으로 듣는 답변은 싱겁기 짝이 없다. 때로는 질문을 한 사람조차도 자신이 한 질문의 내용을 잊어버린다. 그렇다면 채팅 프로그램으로 강의를 하면 될 것 아니냐고 하겠지만 70여명이 동시에 우글거리는 채팅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또 과제물을 전자우편으로 주고받는 일이 밖에서 볼 때는 우아하게 보일지 몰라도 그 현장에 있는 필자에게는 이보다 더 한심한 일은 없다고 믿는다.

<조환규 부산대 정보컴퓨터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