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밀레니엄 리더 (6)

할시 마이너 CNET설립자.CEO

 실리콘밸리와 할리우드가 만나는 곳에 CNET(http://www.cnet.com)이 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CNET은 월드와이드웹과 케이블TV의 교차점을 지난다. 첨단기술의 흐름을 한 눈에 읽을 수 있는 정보에 「USA 투데이」식의 화려한 볼거리를 곁들여 케이블TV와 인터넷에 동시에 띄운다는 게 CNET 설립자 할시 마이너(34)의 비즈니스 플랜이었다.

 버지니아대학 인류학과를 졸업한 마이너는 20대 초반에 어려서부터 꿈꿔왔던 사업을 시작했다. 회사이름은 글로벌 출판사(Global Publishing Corporation). 이 회사를 들여다보면 전혀 글로벌하지 않았다. 고객은 딱 한 업체, 메릴린치뿐이었다. 따지고 보면 출판업도 아니다. 컴퓨터 네트워크를 이용해 직장인들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했기 때문이다. 또 주식회사가 아니었으니 코퍼레이션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이처럼 거창한 이름은 할시 마이너의 장기적인 비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마이너는 GPC사의 운영이 어려워지자 자신의 고객이었던 메릴린치의 투자자문역을 거쳐 세계 최대의 헤드헌팅업체 러셀 레이놀드에서 일하다가 또다른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케이블TV에 빈 채널이 많은 것을 보고 MTV풍의 화려한 색채가 가미된 컴퓨터교육전문 채널을 만들면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을 것이라는 게 그의 계산이었다. 컴퓨터와 디지털 기술에 대한 온라인 콘텐츠를 케이블TV 프로그램과 접목시킨다는 그의 아이디어는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설립자인 폴 앨런의 눈에 띄었고 CNET에 500만 달러를 투자했다.

 그래서 95년 4월 시작된 것이 「CNET Central」로 케이블TV 과학채널인 USA 네트워크를 통해 컴퓨터교육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지금도 「Up next」 「The Web」 같은 프로그램은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매거진 쇼다. 인터넷에 cnet.com이 오픈한 것도 같은 해. cnet은 온라인에 데뷔하자마자 반향을 일으키며 최고의 수익을 창출하는 웹콘텐츠로 성장했고 이제는 지프 데이비스와 경쟁할 정도로 영향력 있는 인터넷미디어가 됐다. 97년에는 포털사이트 스냅(Snap.com)을 오픈했다. 야후와 익사이트 같은 포털은 매월 포르노 콘텐츠로 100만 달러 이상을 벌지만 스냅은 어린 딸과 함께 볼 수 있는 건전한 가족중심의 포털을 표방해 지지를 받았다. 스냅은 60%를 NBC방송에 팔아 NBC Interactive(NBCi)로 개편됐다.

 할시 마이너는 겉으로는 부드럽고 연약해 보인다. 어린 시절 그는 컴퓨터실에 틀어박혀 몇 시간이고 코드와 씨름하는 이른바 「클로셋 너드(closet­nerd)」였고 서른네 살이 된 지금도 수줍은 소년티를 벗지 못하고 있다. 주름진 바지와 흔히 로퍼라 불리는 간편한 운동화를 신고 술집에 들어가면 바텐더가 주민등록증을 보자고 할 정도.

 사실 마이너는 좋은 가문에서 자란 품행이 단정한 젊은이의 전형이다. 그의 이름이 풍기는 분위기와 비슷하다. 그의 집안은 해군제독 빌 할시 같은 유명인사를 배출한 명문가다.

 그는 골드 마이너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그의 성 마이너(minor)는 광부, 마이너(miner)와 발음이 같다. 이름처럼 실리콘밸리에서 금맥을 캐낸 젊은 경영인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비즈니스 위크」는 마이너를 온라인의 황제로 보도했고, 「포브」지는 기억해야 할 우리시대 웹 기업가로 선정했다. 그의 친구인 어스링크사의 스카이 데이튼은 마이너를 가리켜 「인터넷의 테드 터너」라고 부른다. TBS, CNN, TNT, 카툰 채널, 터너 무비 클래식 등 미디어제국을 만든 테드 터너와 마찬가지로 마이너도 사이버스페이스에서 CNET 브랜드의 신대륙을 건설하고 있다.

<이선기기자 s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