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단편영화는 한국영화가 지닌 또 하나의 무기가 되었다. 그 동안 영화제나 특별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간간이 소개되던 단편영화가 정식으로 극장에 공식적인 간판을 내걸고 상영되고 있다. 칸 영화제를 비롯, 클레르몽페랑, 몬테카티니 단편영화제 등 세계 유명 영화제에서 주목받았던 국내 단편영화 7편을 묶은 「한국 단편영화의 힘」. 이른바 「한국형 블록버스터」들이 난무하는 시점에서 「한국 단편영화의 힘」은 낯설지만 새로운 영화보기의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프랑스 칸 영화제, 호주 멜버른 국제영화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이미 유명세를 치른 송일곤 감독의 「소풍」을 비롯, 안재훈·한혜진 공동 연출의 애니메이션 「히치콕의 어떤 하루」 등 7편의 단편들은 16㎜와 35㎜ 작업으로 짧게는 8분에서 길게는 20분 내외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에 개봉된 몇몇 단편들은 그것이 「장편을 만들기 위한 사전 습작」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킬 만큼 뛰어난 재기와 감동을 전한다. 아직 이렇다할 상업적 유통이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개인적 의지에 근거해 만들어지는 단편영화들은 그 때문에 오히려 장편 상업영화보다 감독들의 성향이나 캐릭터를 더 밀접하게 느낄 수 있고, 때로 관객들에게는 훨씬 더 밀착된 감동을 전달하기도 한다. 소재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단편」에 적합하거나 효과적인 이야기들은 있다. 이번에 상영작으로 뽑힌 7편도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소외와 암울함을 충격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이 많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역시 송일곤 감독의 「소풍」. 『IMF 이후의 한국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줬다』는 평을 얻은 이 작품은 한 가장의 가족 동반자살을 다룬다는 점에서 제목의 이중적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자동차 배기관을 호스로 연결해 자살을 준비하는 과정이 세밀하게 묘사되면서 혼자 살아남은 어린 아들이 부모의 주검을 지켜보는 마지막 장면은 가슴이 서늘할 정도. 김대현 감독의 「영영」은 아들의 주검을 앞에 놓고 염을 하는 노모의 절망을 이미지화 한 작품이다. 대사나 음악 없이 일상적인 소리들과 영상만으로 담아낸 뛰어난 진혼곡. 임필성 감독의 「소년기」나 최진호 감독의 「동창생」은 연령대를 달리하긴 하지만 소외의 문제를 흥미 있게 전달하는 작품들이다. 이인균 감독의 「집행」은 종부성사를 맡은 한 젊은 사제와 아버지를 죽인 젊은 사형수의 만남을 통해 신념과 구원에 대한 문제를 그린다. 김성숙 감독의 「동시에」는 인간의 욕망과 도시의 소음이 마치 신음처럼 자리잡고 있는 청계천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고, 셀 애니메이션 「히치콕의 어떤 하루」는 히치콕의 하루를 다양한 영화속 장면의 패러디로 이어 붙여 기발함과 재미를 더한다.
<엄용주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