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희 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표준화 활동은 국제적으로 각 나라 또는 회사들의 기술력을 경쟁하게 하고 이를 판매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우리가 표준화 활동을 하는 것은 국제 전문가 집단에 국내 기술수준을 알리고 국산 제품이 국제적으로 호환할 수 있음을 홍보하는 기회로 받아들일 수 있다. 또한 국내 개발 제품의 해외수출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음은 당연하다. 이는 세계 표준화 활동을 선도하는 기업이 세계기술을 리드하고 그 회사의 제품이 세계적으로 신뢰를 받고 있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표준화는 갈수록 중요성이 더해가고 있다. 세계화의 촉진에 따라 제품의 교역은 확대되고, 인간의 이동 속도와 생활 반경이 확대되면서 정보통신 장비의 휴대성 및 접속상의 호환성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표준화 활동을 위해서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단지 기술을 개발 또는 보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지고 있는 기술을 국제 표준에 적극 반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을 기반으로 하여 표준화 활동자가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국제 흐름을 파악하고 협상력·사교성·인지도에서 뛰어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대표가 국제표준화기구의 대표를 맡는 경우가 차츰 증가하고 있으나 아직 활동에서 선진국 전문가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표준화 업무를 극히 부수적 업무로 이해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는 근래까지 우리나라가 세계 기술선진국들이 만든 정보통신 규격들을 그대로 이해하여 이를 단순 제품화하는 데 익숙했던 탓도 있다. 따라서 표준화 전문가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연구개발 과정에 있어서 이에 대한 고려가 미흡하다. 이 현상은 단적으로 국제 표준화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이 수시로 바뀌면서 자료를 수집하거나 동향 파악을 위해 참석하는 예나 국제 기구에서 책임을 맡은 사람이 본업으로 인해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경우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표준화 관련예산이 일반 국외 출장 예산의 일부로 편성돼 운용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필자가 겪은 경험담이다. 13여년 전에 「No.7」 신호방식 표준화와 관련해 참석하곤 했던 ITUT(기존 CCITT)의 SG11 회의에 IMT2000 기술과 관련해 최근에 다시 참석한 일이 있다. 놀랍게도 참석자의 절반 이상이 그때 참여하고 있던 전문가들이 계속해서 같은 연구반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표준화 전문가는 기술 외교관으로 비유되면서 크게 세 그룹으로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첫번째가 직업적 전문가다. 표준화 업무를 주업으로 하여 활동하는 사람으로 ITU, 3GPP/3GPP2의 관리자나 SG 또는 TSG의 사장을 들 수 있다. 이들은 한 기술 분야에서의 깊이 있는 지식보다는 오랜 경험에 의해 넓은 분야에 걸친 지식과 언어 구사력, 회의 진행, 문서 편집력이 뛰어나고 표준화 활동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이다. 이들은 국제 표준화의 큰 흐름을 파악하고 국내 기술이 국제 표준에 반영되는 데 가교역할을 한다.
두번째 전문가는 기술적 전문가다. 표준화의 흐름에 따라서 연구개발을 수행하고 개발된 결과들을 기고를 통해 세계 표준에 반영하는 사람들이다. 이 전문가들은 특정 기술의 표준화 흐름에 매우 민감하며 따라서 관련분야 표준화 회의에 빠짐없이 참석한다. 기술 발전에 의해 새로운 대체기술이 나타날 경우에는 계속해서 후속 연구를 수행하거나 교체되기도 한다. 특정 분야의 기술적 전문가이면서 본인이 발표할 내용에 대해 충분히 영어로 설명하고 질의에 답변할 수 있는 언어 구사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들은 국내에서 개발된 기술을 세계에 세일하고 국내 제품의 개발에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세번째 그룹은 비교적 수동적으로 표준화에 참여하는 기술개발자 그룹이다. 자기가 개발한 기술 중에서 필요하면 수시로 회의에 참석해 이를 표준에 반영한다.
이상의 전문가들 중 현재 우리의 사정을 감안할 때 가장 중요하게 요구되는 전문가 그룹은 두번째 그룹이다. 이들은 관련기술 분야의 전문가 중에서 영어를 잘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을 적절히 발탁하고 관련회의에 지속적으로 참석할 수 있도록 지원해줌으로써 육성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연구개발의 계획에 있어 표준화 업무를 충분히 분석하고 계획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떠한 표준화 기술이 있는지, 그 활동을 위해 어느 정도의 인력과 예산이 필요한지, 누구를 그 일에 할당할 것인지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개인의 연구개발 업무 분장에 있어서 담당업무가 지속성을 갖도록 유지해 주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첫번째 그룹은 좀더 장기적 관점에서 육성돼야 한다. 이러한 전문가를 확보하는 길은 외국인 중 적절한 인물을 발탁하거나 영어에 능통하면서 기술 전문인인 국내인을 관련회의에 꾸준히 참석토록 하여 소위 관련 표준화 단체에서 터줏대감이 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표준화 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표준화의 중요성과 전문성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기술이 선진화될수록 이를 국제 표준에 반영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표준화 전문가의 역할은 기술 외교관으로서 앞으로 중요성을 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