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계 원로들, 과기행정 개혁 요구

 과학기술계 원로들이 과학기술행정의 대대적인 개혁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전통적인 사농공상 의식으로 그동안 대접받지 못해온 과학기술계가 현실의 한계를 극복하고 국가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공통인식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과학기술계는 그동안 스위스 국제경영원(IMD) 보고서 등을 통해 과학기술경쟁력이 형편없게 평가된 것이 무엇보다도 정부의 지나친 간섭 등에 원인이 있는데도 정부가 모든 책임을 과학기술자들에게 떠넘겨 사기를 저하시켰다며 공공연히 불만을 토로해 왔다. 특히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서 과학기술이 근간을 이루는데도 정부가 과학기술자들을 배제한 채 여전히 푸대접하고 있다고 성토하고 있다.

 지식기반사회에서는 과학기술이 경제 전반을 주도할 수밖에 없는데도 과학기술자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여전히 경제관료 중심의 탁상행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마디로 한국 최고의 두뇌집단인 과학자들에게 정부가 사소한 연구개발예산까지 시시콜콜 간섭하고 있는 데 대해 더이상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게 과학기술계 인사들의 인식이다.

 과학기술계 원로들의 주장은 과거정권때부터 계속돼 왔던 것이다. 그러나 새 정부 들어 김대중 대통령이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직접 언급하고 당선자 시절부터 과학기술현장을 직접 찾는 등 전임 대통령들에 비해 과학기술에 관심이 무척 많아 과학기술계가 크게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누군가 대통령을 잘못 보좌하고 있다』는 말이 터져나올 정도로 출연연의 구조조정이나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출범 등과 관련된 과학기술계의 요구사항이 제대로 통치자에게 전달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과학기술계의 한 원로는 『5공 이후 국가과학기술정책이 걷잡을 수 없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데도 뭔가에 의해 진정한 과학기술계의 목소리가 통치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며 그 배후로 과기부를 지목하고 있다. 과학기술계는 때문에 과학기술계의 뜻이 대통령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대통령이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라도 「과학기술특보제」의 신설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학기술계는 특히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사무국 기능을 맞고 있는 과기부가 관련부처와 연관된 기획조정이 어려운 만큼 중립성을 갖는 종합조정기구를 대통령 과학기술특보 아래 사무국으로 설치해야 하며 한국과학기술평가원과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을 통합해 과기특보의 감독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특히 일각에서는 과학기술계의 의견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천만인 서명운동을 벌이자는 주장까지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과학기술계 원로들의 요구는 국과위 출범 1년여도 채 되지 않아 제기되었다는 점에서 그 속배경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은영 과총 부회장은 『21세기를 앞둔 우리나라가 70년대 과학기술에 대한 통치권 차원의 관심이 필요하며 지식기반사회에 진입하기 위해 과학기술의 르네상스를 강조할 시점』이라며 『과기특보제의 신설 등을 통해 대통령이 과학기술 현안을 직접 챙기고 국가과학기술 정책목표를 설정하고 강력히 추진해야 우리나라가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과위 설치 근거를 마련한 과학기술 혁신을 위한 특별법이 채 잉크도 마르기 전에 국민회의에서 과학기술기본법 제정이 추진되고 있고 이들의 주장이 상당부분 기본법안의 주장과 일치하고 있어 이번만큼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정창훈기자 ch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