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와 우리나라의 사람들이 네트워킹을 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최근 들어 실리콘밸리가 어떤 이유로 성공했는가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과 연구들이 많이 진행됐는데, 이들 연구분석에서 자주 거론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교류하는 네트워킹에 대한 것이다.
즉 사람들과 만나며 비즈니스를 만들고 유지해 나가는 사람들간의 네트워킹을 자유롭고 폭넓게 가져갈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보이지 않는 업체들간의 전략적 협력관계가 이어져 궁극적으로 실리콘밸리는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주고 있다는 점에 많은 사회학자들과 연구가들은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실리콘밸리에는 인적 네트워킹을 통해 유명해진 한 중국식당이 있다. 그곳에 가면 매주 정해진 시간에 항상 모임이 있고 모임을 통해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데 실리콘밸리에는 이런 식당이나 카페가 여러 군데 있어서 모임을 공지해놓고 정규 멤버나 멤버가 아닌 사람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가 갖춰져 있다. 바로 이런 예가 실리콘밸리의 사람관계 네트워킹 문화의 특징이자 미국 경제의 활력과 기업 경쟁력을 제고시켜주는 첫 단추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비해 우리나라 사람들의 네트워킹 문화는 초등학교 수준이다. 아는 사람들만 참여하는 폐쇄적인 네트워킹 집단인 경우가 많다. 여기에 지인이 있으면 그를 통해 그 집단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같은 과정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고 이런 상황의 반복을 통해 다른 사람과의 비즈니스 네트워킹이 구축된다.
비공식적인 접대도 그래서 더 많은 게 아닌가 싶다. 물론 CIO 포럼이나 행사의 리셉션 같은 이벤트를 통해서도 이런 인간 네트워킹이 만들어지는 예외가 있긴 하다.
몇몇 예외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국내의 실정은 실리콘밸리에서처럼 공개적인 모임과 교류가 보편화돼 있지는 않다.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 최고경영자라면 그래도 인간관계 네트워킹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그러나 중간관리자급이나 엔지니어들은 네트워킹하는 기회 자체가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유롭게 교류하는 네트워킹 문화 자체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일례로 미국 실리콘밸리와 견주어 국내 벤처타운이라 칭해진 포이밸리, 테헤란로 주변의 벤처기업들 사이에 실리콘밸리에 있는 중국식당 같은 곳은 없다.
매주 목요일 어느 식당에 가면 직접 개발한 프로그램을 발표하는 사람도 있고 새로 나온 신제품을 소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히트상품으로 유명해진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와서 얘기하는 「메카」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곳이 중국식당이든 햄버거에 콜라를 먹는 가게이든 상관없을 것 같다. 실제 비즈니스 현장의 살아있는 얘기를 나누며 자기가 가진 것을 마음을 열어 나눔으로써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그런 문화가 있어야 한다.
이런 문화가 하루 이틀에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언론에서도 단순히 포이동 근처에 벤처가 몰려있다는 기사만 쓸 것이 아니라 그런 문화를 유도할 필요가 있고 또 벤처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아는 사람들끼리만 매일 만나는 「폐쇄적 그룹」에만 머물지 말고 밖으로 나가 다양한 사람들을 포용해야 한다. 기존의 틀과 교류하는 젊은 피의 수혈은 비단 정치권에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새로운 인간관계 네트워킹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임을 악용하는 무리를 견제해야 한다. 우리나라 정보산업계와 벤처업계에 만연된 「∼라고 하더라」는 식의 소문은 대개 발전하고 있는 기업이나 기업인에 집중돼 있게 마련인데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다. 첨단 산업에 종사하는 벤처기업들이 그야말로 젊은 정신을 망각한 채 구태만 답습하는 「무늬만 벤처기업」이 되어가고 있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기대하기 어렵다.
<허진호 아이네트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