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분야에서 경쟁력을 급격히 상실한 해태전자·아남전자·대륭정밀 등 중견 가전사들이 디지털사업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거듭나기에 한창이다.
3사는 한때 각각 오디오와 비디오 위성방송수신기 분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명성을 떨치며 잘나가던 중견기업들이었다. 그러나 전통적인 가전제품이 기술발전의 한계에 봉착하는 대신 규모의 경제와 가격경쟁 일변도로 치달으면서 이들의 입지는 줄어들고 있다.
골리앗과 같은 세계유수의 대형업체들이 기술개발이 정체되고 있는 가전제품을 놓고 치열한 확장경쟁과 가격경쟁을 펼치면서 덩치보다 기술이 무기인 자그마한 다윗들은 설땅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들 3사는 가뜩이나 어려운 시국에 IMF한파라는 치명타까지 맞으면서 생존의 기로에까지 서게 되는 위기에 봉착해 있다.
그러나 중견3사는 경쟁력을 잃어버린 기존 사업을 과감히 축소하는 대신 신천지인 디지털시장을 적극 개척하면서 위기극복에 나서고 있다.
오디오의 대명사이던 해태전자(대표 허진호)는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오디오 매출비중이 61.3%에 달했다. 그러나 올 상반기 동안에는 오디오 매출비중이 39.7%로 크게 줄어든 반면 광중계기·PCS 등 정보통신 제품의 매출비중이 무려 57%로 높아졌다.
특히 PCS와 광중계기는 매출비중이 각각 36.6%와 18.4%로 단일품목 매출비중 1, 2위를 기록했다. 오디오 분야에서 가장 매출비중이 큰 단일품목인 앰프 및 데크가 겨우 8.7%에 불과한 것과 비교하면 해태전자의 디지털사업화가 어느 정도로 급진전되고 있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아남전자(대표 염동일)는 디지털위성방송수신기(DSBR)사업 참여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주력품목이었던 TV와 오디오의 경쟁력이 약화된 아남전자는 이미 지난 97년에 DSBR의 매출비중을 37.5%로 끌어올리는 대변신을 시도했다. DSBR의 비중은 당시 매출비중이 가장 높았던 TV(39.5%)보다 겨우 2% 포인트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아남전자는 98년에 DSBR의 매출비중을 46.1%로 더 끌어올려 단일품목으로는 최고의 매출을 기록했다.
아남전자는 올해 부도가 나면서 수출주력품목이던 DSBR의 거래가 대부분 끊어져 다시금 TV 등 기존 가전제품 매출에 의존하고 있지만 정상화만 되면 획기적인 매출신장을 경험했던 DSBR의 수출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날로그 위성방송수신기(SVR)의 대표주자였던 대륭정밀도 디지털사업화에 승부를 걸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대륭정밀(대표 이행부)은 생산시설의 대부분을 필리핀과 북아일랜드 공장으로 이전하면서 올 상반기에 SVR의 매출비중이 겨우 5.7%로 떨어졌다. 반면 유럽형 디지털무선전화기인 덱트(DECT)가 전체매출의 30.1%나 차지했으며 DSBR의 비중이 15.6%로 그 뒤를 이었다. 차량속도감지검출기도 10.2%의 매출비중을 지니는 등 디지털제품의 비중이 전체매출의 60%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대륭정밀의 아날로그 제품군은 이제 SVR와 CATV 컨버터 및 해외공장에 공급해주는 부품 및 로열티 정도에 불과하다.
중견 가전 3사의 디지털사업화 행보는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기 때문에 대형 가전 3사보다 더욱 빠르고 적극적이다. 중견 3사는 디지털 사업화를 추구하면서 기존 TV나 비디오·오디오 등이 아닌 니치마켓을 적극 파고들고 있는 반면 삼성전자·LG전자·대우전자 등은 주력품목인 AV시장이 디지털화되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유성호기자 sungh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