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기획-뉴스&밀레니엄> "지식의 파워"가 새 천년 주도

새천년을 앞두고 「지식」이 최고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산업화시대로 요약되는 자본주의 사회의 최고 가치가 자본이었다면 정보시대로 대변되는 지식사회의 최고 가치는 지식이 된다. 지식의 의미에 대해 지식이론의 원조격인 피터 드러커 교수는 이를테면 불가산(不可算) 명사로서 지식(Knowledge)보다는 복수형 가산 명사로서 「지식들(Knowledges)」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말한다.

 피터 드러커에 의하면 지식사회에서의 지식은 이전 산업사회에서 지식으로 간주하는 지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또 사전적인 의미에서 지식으로 인정되는 것과도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예컨대 독일과 영미권의 일반교양(Liberal Arts)에 의한 지식은 개인의 한평생 직업과는 별다른 관련이 없다. 이같은 지식은 응용 능력보다는 개인의 성장과 발전에 초점을 맞춘 것들이다.

 그러나 지식사회에서의 지식은 오직 응용을 위해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응용될 수 있는 지식은 매우 전문적인 것이다. 이런류의 지식은 과거 그리스 시대에도 존재했는데 소크라테스 같은 철학자들은 이를 당시의 보편적 개념으로서 지식으로 부르지 않고 단순명료한 과학기술(Technology)이라고 불렀다.

 21세기의 지식이 관념적 불가산 명사로서 지식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는 「지식들」로 표현돼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지식에 대한 이론은 지난 60년 피터 드러커가 「지식작업(Knowledge Work)」 「지식근로자(Knowledge Worker」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이래 큰 발전을 보았다.

이후 80년대 들어 노나카 이쿠지로, 데이비드 가빈, 크리스 아지리스, 도로시 레너드, 조지 로스, 제프 패포스 등 석학이나 최고경영자들이 등장하면서 다양한 지식 이론들이 꽃을 피웠고 21세기 지식사회의 최대 가치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이 가운데 도쿄 히토츠바시대 노나카 이쿠지로 교수의 나선형 지식창조이론은 혼다·마쓰시타·캐논·샤프와 같은 일본기업들의 경영혁신 근거를 마련해줬을 뿐만 아니라 피터 드러커의 기초적 지식이론을 뛰어넘는 업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식창조이론은 형식지(形式知·Explicit Knowledge)와 암묵지(暗默知·Tacit Knowledge)라는 두 가지 유형의 지식이 근간을 이루고 있는데 형식지란 공식적이고 체계적인 지식, 이를테면 과학공식이나 규격 또는 소프트웨어 형태로 쉽게 전달·공유할 수 있는 형태의 지식을 의미한다.

 반면 암묵지는 공식화하기 어려운 지식, 그래서 다른 사람이나 조직에 전수하는 것도 어려운 지식을 말한다. 한국의 인간문화재나 좀더 확대된 의미로 최근 정부가 정책화하고 있는 신지식인들의 지식도 암묵지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나선형 지식창조는 지식이 개인의 암묵지가 조직적으로 계량화할 수 있는 형식지로 이동해가는 과정에서 조직의 생산성을 극대화한다는 이론이다.

 물론 생산성을 극대화한 형식지는 또다른 암묵지를 창조해 나선형의 이동을 계속하게 된다.

 지식 이론이 21세기 사회를 정의하는 화두로까지 등장할 수 있도록 한 1등 공신은 바로 정보기술의 발달이다. 특히 정보통신의 발달은 지식의 활용과 새로운 창조를 더욱 용이하게 했고 지식접근이나 활용의 시·공간적 장애를 허물어뜨렸다.

지식 이론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지난 20여년 동안 정보기술의 발전 상황을 보면 컴퓨터의 경우 1달러 투자당 정보처리 능력이 1만배로 증가했으며 음성 전송회로 이용 비용 역시 광케이블의 등장으로 1만분의 1로 줄어들었다.

 지식 이론과 정보기술의 시너지가 낳은 것이 바로 지식경영이다. 지식 이론가들이 대부분 그 학문적 기반을 현대경영학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지식경영의 대두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지식경영의 대두는 기업경영의 패러다임 변화요구를 이끌어냈고 이 과정에서 지식 이론을 대표하는 여러 신조어의 탄생을 알렸다.

 조직의 다운사이징을 의미하는 업무재구축(BPR : 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 기업·협력사·판내·구매·유통·소비자간의 복잡한 네트워크를 혁신하는 가치사슬(Value Chain), 선진 조직(기업)을 창조적으로 모방해서 격차를 줄이는 벤치마킹(Bench Marking), 불가능한 목표를 설정하고 추진해가는 스트레치 타깃, 글로벌네트워크(인터넷)와 지식경영을 통합한 디지털신경망체계(DNS : Digital Nervous System), 탁월한 개인능력을 집단의 힘으로 끌어올리는 팀빌딩(TB), 조직의 모든 정보를 시공을 초월해서 통합하고 관리해주는 전사적자원관리(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 그리고 웹(인터넷)을 이용한 전자거래시스템인 시장공간(마켓 스페이스) 등이 그것들이다.

 이 가운데 BPR·가치사슬·벤치마킹 등의 개념은 90년대 중반까지 세계적으로 급격한 기류를 타다가 최근에는 스트레치 타깃, DNS, ERP, 시장공간 등이 지식경영의 중심가치로 등장했다.

지식경영의 필요성은 기업들이 역으로 정보기술과 인터넷이 발달함에 따라 오히려 더많은 불확실성에 직면한 결과에서 비롯되고 있다.

 정보기술 등의 발전은 엄청난 속도의 환경변화로 이어져 기업들은 눈앞의 변화에 대응하기도 급급해졌고 경영확장은커녕 갈수록 생존조차 어렵게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개인은 지식근로자로서의 존재를 끊임없이 위협받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앞서 언급한 스트레치 타깃이란 기업이 본래 가지고 있는 역량과 예산 범위내에서 전략과 사업을 구상하는 수동적 자세에서 탈피해 불가능한 목표를 설정하고 여기에 도전하는 것을 말한다. 스트레치 타깃은 목표달성이 불가능하다는 사내 패배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것인데 이는 새로운 지식의 창조나 최고경영자의 강력한 추진력을 전제로 할 때만 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경우 과거 변화의 속도가 느렸던 시대에는 외국의 선진기술이나 경영방식을 모방하거나 부분적 개선을 통해 선진국과의 격차를 좁힐 수 있다고 보았고 실제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단순 모방조차 힘들 만큼 세계 기업 경영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 차이가 바로 선진기업과 우리 기업간의 지식 차이인 것이다.

 지식의 본뜻에는 결국 지식사회에서 끊임없는 지식창조의 리듬을 타지 못하는 기업이나 개인은 산업사회에서의 낙오나 패배보다도 훨씬 큰 충격을 맛볼 수밖에 없을 것임을 경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겠다. 21세기 지식사회에 대비하자는 주장이 그저 세기말, 세기초를 경험하는 설렘 차원이나 구두선에 그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것도 바로 이 대목에서일 것이다.

<서현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