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업계가 대형 할인매장의 가전제품 가격파괴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부 대형 할인점들이 소비자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가격을 출하가 이하로 내려 파상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대리점 위주로 제품을 공급해온 가전업계로서는 대형 할인매장이 대리점 공급가보다 싸게 소비자들에게 판매함으로 기존 대리점유통체계가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 국내 최대의 유통할인점인 E마트는 최근 전국 15개 체인망에서 「E마트 대표상품 한국 초특가 기획전」을 실시, TV·냉장고·세탁기 등 주요 가전제품을 시중 판매가격의 30∼60%선에 판매하는 등 출혈을 불사하는 판촉행사를 펼치고 있다.
E마트는 삼성전자·LG전자·대우전자의 보급형 29인치 컬러TV를 43만∼44만원에 판매해 출하가인 46만여원보다 싸게 판매하고 있다.
또 소비자가격 81만원에 실판가격 65만∼75만원 정도인 10㎏ 세탁기도 균일가 47만5000원, 100만원대 상품인 500L 냉장고의 경우에도 66만8000원으로 인하한 상태다.
특히 TV의 경우에는 평소 월 2500∼3000대를 소화하는 데 그쳤던 E마트가 최근 5000여대의 물량을 확보하고 적극적인 특판공세를 펼치고 있어 시장에 끼치는 영향이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E마트의 가격공세에 편승해 한국까르푸도 시중가격 20만원대인 14인치 컬러TV를 16만9900원, 실판가 37만원대인 4헤드 VCR를 25만5000원으로 끌어내린 데 이어 주요 경쟁 할인점과 일선 대리점들이 E마트 공급가와 같은 가격에 제품을 공급해줄 것을 제조업체에 요구하는 등 가격인하경쟁이 관련업계 전반으로 비화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상품 공급자인 가전업체의 입장이 난처해지고 있다. 대형 할인점에 대한 물건공급을 중단할 수도 지속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지경에 빠졌다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대형 할인점과 일반 대리점으로 출하하는 제품가격에 차이가 있다는 점.
E마트와 같은 대형 할인점은 직접 가전업체와 공급물량 및 가격을 협의해 결정하기 때문에 일부 제품에서 적자를 감내하는 가격으로 소량을 출하하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이를 다른 할인점이나 일선 대리점에 동등한 조건으로 확산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출하가 편차는 곧 실판가로 연결돼 현재 29인치 컬러TV의 경우 일선 대리점은 52만∼55만원, E마트는 43만∼44만원이라는 가격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LG전자의 한 관계자는 『최근 시중 대리점과 영업소로부터 E마트 출하가와 같은 가격으로 물건을 공급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하지만 가전업계로서는 앞으로 제품의 대량공급이 가능한 대형 할인매장에 공급을 중단할 수 없는 데다 또 적자가 분명한 상황에서 이를 일선 대리점으로 확대적용하지는 못할 것이 분명해 시름은 갈수록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은용기자 e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