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는 정신과 스타일 면에서 도전을 감행한 젊은 영화다. 몇 편의 단편영화를 통해 이름을 알린 이상인 감독은 「질주」를 통해 90년대 출구없는 젊음의 방황과 아픔을 스케치한다. 감독은 내용과 형식적인 면에서 스타 시스템의 주류영화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지만, 그것이 과연 상업영화와의 적절한 타협점을 찾았는가는 의문이다. 자극적이고 작위적인 갈등을 피하는 대신, 일상적이고 구질구질한 현실을 통해 우리들의 얘기를 솔직하게 표현하고자 했지만 보편적이라 생각했던 소재는 90년대 말에 떠올리기엔 너무 뒤늦은 감이 든다. 이로 인해 나름대로 공을 들인 영화적인 표현력도 제 빛을 발하지 못한다.
영화는 발닿는 현실에 불만은 있지만 나름대로의 꿈을 갖고 통과의례를 거쳐가는 4명의 젊은이들을 중심 축으로 펼쳐진다.
낮에는 카페 프리버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이면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여성 로커 바람(남상아). 주중엔 일식집에서, 주말이면 야구장에서 인형 의상을 입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으는 상진(이민우).
유학간 미국에서 전공이 아닌 만화에 심취했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되불려와 매일밤 술과 여자로 지새우며 반항하는 승현(김승현). 서울대 출신으로 고시에 낙방한 후 취직 시험에도 떨어져 자신감을 잃어가는 선우(송남호). 영화는 아픔과 젊음을 공통분모로 지닌 이 4명의 이야기를 각자 독립된 시각으로 쫓아가는 방식을 취한다.
이 4명이 공유하는 공간은 프리버드 카페가 있는 건물. 우연히 나이트 클럽에서 춤추는 바람을 본 승현은 그녀의 뒤를 쫓아 프리버드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상진은 같은 건물의 일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바람과 친해진다. 한편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상진의 여동생과 친해진 선우는 같은 건물의 비디오방에서 일을 시작한다. 사소한 실수로 일식집에서 해고당한 상진은 친구와 함께 「한탕」을 결심하고, 바람은 언더그라운드 가수로서는 힘겨운 자신의 음반을 내기 위해 콘서트를 준비한다.
「질주」를 통해 엿보는 젊음은 위험하지만 그렇다고 타협을 통해 대안을 찾지는 않는다. 포장된 청춘의 모습이 아니라 실재하는 청춘의 모습을 좀 더 접근해서 그려내겠다는 감독의 의도는 의욕적이지만 그로 인해 영화는 새롭다기보다는 상투적이고, 감각적이기보다는 어설픈 넋두리가 돼버렸다. 록카페와 오렌지족, 비디오방과 여고생의 일탈적인 섹스 등 간간이 시대상을 진단하는 소재로 이슈화되었던 이야기들은 벌써 동시대의 언어로 풀어내기엔 너무 진부한 소재가 되고 말았다. 영화의 신선감과 사실적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이민우를 제외하곤 신인배우들을 기용했지만, 다소 낯선 이들의 연기는 감독의 의도와는 반대로 영화의 이미지를 오히려 약화시키는 아쉬움이 있다.
<엄용주·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