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의 기술적 가능성과 무한한 인간 상상력의 결합물인 컴퓨터그래픽스(CG)가 예술이냐, 비예술이냐의 논쟁은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한편에서는 CG를 일반미술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노력도 경주되고 있다고 한다.
CG는 정통미술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선 CG작가는 정통적인 미술가와 마찬가지로 상상력으로부터 작품의 소재를 찾고 그 대상을 형상화하는 과정에 이르게 된다.
이 때 미술가가 붓이나 물감을 형상화 도구로 삼는다면 CG작가는 컴퓨터를 동원한다.
이 과정까지는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없을지 모른다.
가령 슬픔이 가득찬 사람 얼굴을 표현한다고 하자.
미술가는 표정을 그리기 위해 『노랑색에 빨간색을 섞으면…』 하는 식의 물감배색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반면 CG작가는 컴퓨터가 이미 계산해놓은 팔레트에서 원하는 색상을 선택하면 된다.
미술가 쪽에서 보면 이 과정은 CG작가가 컴퓨터가 할 수 없는 물리적 작업을 대신한다고 볼 수 있다.
할리우드 영화가 상상력의 놀음이라는 비난을 받기 시작한 것은 CG기술의 발달시기와 궤를 같이한다.
그 비난의 가장 큰 줄기는 역시 비현실성, 즉 예술로서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보편성의 부재다.
순수영화예술론자들은 CG의 남용이 영화에서의 리얼리즘 부재를 부추겼다고 난리다.
하지만 영화예술론자들도 그렇고 예술논쟁을 벌이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범하는 논리적 오류가 하나가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CG는 인간 상상력의 소산보다는 컴퓨터기술의 소산에 더 가깝다.
표현양식이나 기법도 정통예술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내재가치도 차원이 다르다.
CG를 일반예술의 가치기준과 범주에 대입해 해석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CG는 CG의 범주에 속할 뿐이라는 얘기다.
처음에 팝아트가 정통예술론자들로부터 엄청난 비판에 직면했지만 결국 독자적인 위치와 가치를 확보한 것처럼 이제는 (그것이 상업적 가치이든) CG가 갖고 있는 내재적 가치를 정당하게 발견해낼 수 있는 새로운 시각과 접근방식들이 정착돼야 할 때다.
<서현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