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 전자산업의 구조 전환

이상근 전자산업진흥회 정보통신산업부장

 우리나라 전자산업은 전체 수출의 3분의 1이 넘는 주력산업으로 그동안 수출증대와 경제발전에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최근 전자산업이 당면하고 있는 국내외 여건을 감안할 때 과거처럼 가전·부품 산업구조로는 성장의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우리 전자산업은 일본을 모델로 80년대까지는 가전제품 위주로 고속성장을 유지, 외형적으로는 일단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으나 일본과 같은 품목구조를 갖게 되어 세계시장에서 늘 버거운 경쟁을 하지 않으면 안됐다.

 따라서 향후 우리 전자산업의 재도약을 위해서는 통신기기산업을 축으로 한 산업구조로의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대만의 정보산업은 이미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의 세계시장이 정보기기 위주로 성장할 것을 내다보고 정부·연구소·기업 등의 효율적인 정책수행과 연구개발·제품생산으로 전자산업 구조를 컴퓨터산업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 결과 생산 면에서 컴퓨터 및 주변기기 산업이 전체 산업의 절반을 차지하게 됐고 이러한 구조전환으로 어려운 국내외 환경에서도 지속적인 성장세를 유지, 세계 최대의 컴퓨터 공급국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됐다.

 한국을 비롯한 일본·대만·싱가포르·홍콩 등은 생산의 50∼90%를 세계시장에 내다 팔아야 하는 입장에 처해 있다.

 70∼80년대처럼 세계시장이 가전 중심에서는 일본·한국이, 80∼90년대 정보산업 중심의 시장구조에서는 대만·싱가포르·인도가 성공했다고 한다면 정보통신이 주도할 향후 2000년대에는 누가 발빠르게 정보통신산업 구조로 탈바꿈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될 것이다.

 일본은 아직 가전과 부품에서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이 크며 앞으로도 지속시켜 나가려고 노력할 것이고, 대만과 싱가포르는 컴퓨터 하드웨어의 세계 최대 공급국으로 향후에도 그 지위를 향유해 나가기 위해 전력투구할 것이다. 반면 통신기기산업은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다행히도 최근 휴대폰 등 이동통신단말기의 성공적인 생산과 수출, 교환시스템의 국산화 등 우리의 통신기술 발전으로 그 가능성을 가늠해볼 수 있다.

 다음으로 전자산업의 재도약을 위해서는 중소 벤처기업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대만의 컴퓨터산업은 몇 개 기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중소기업으로서 제품 면에서 종류의 다양화, 기업의 발빠른 경영결정, 해외시장 개척능력 등으로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 속에서도 큰 저항을 받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요인으로 평가된다. 미국의 경우도 중소 벤처기업들의 역할이 경제성장의 큰 요인이 되고 있다.

 즉, 소량 다품종이며 회로설계 우위와 가격, 시장 적시출하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전자회로 부문(ASIC을 기반으로 한 통신모듈, 멀티미디어카드, 각종 통신용 카드 등 회로형 제품)에서는 중소 벤처기업들의 아이디어와 능력을 최대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중소 벤처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는 ASIC 제조시설 지원 등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통신기술 습득을 위해 좀더 적극적인 선진 외국기술과 기업유치가 필요하다. 대만은 외국인기업의 성공적인 유치정책으로 내국인기업과의 경쟁보다는 상호보완적 상품구조로 대만의 컴퓨터산업 성장의 큰 힘이 되고 있다. 싱가포르의 경우는 외국인기업들의 생산수출 비중이 전체의 90%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 전자산업도 초기에는 거의 외국인들이 국내에 들어와 생산하고 수출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차츰 우리 기업들이 기술을 배웠던 것처럼 이제 정보통신산업으로의 전환을 신속히 하려면 선진 외국기술을 배우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최근 통신부문의 많은 규제 완화 및 철폐와 정부의 통신인프라에 대한 막대한 투자로 이제는 발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다. CDMA기술이 좋은 예라 할 것이다.

 이와 병행, 정부의 효율적 기술개발 지원정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기술집약적 고부가가치 제품인 정보통신기기산업 체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기술개발 지원 측면에서 기술수준이 높고 낮은 평가를 통한 지원보다는 상품화 성공가능성 여부가 우선돼야 할 것이며, 중소기업들의 자체 개발력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정부출연연구소의 역할을 기업의 기술개발을 지원하는 체제로 바꿔나가야 한다.

 대만의 전자공업연구원(ERSO)이 중소기업들이 높은 수준의 정보기기를 생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은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중소기업 개발 제품의 내수시장 한계 극복을 위한 시장확대 및 판로지원에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정책 중 자금지원 프로그램들이 여러 종류가 있으나 대부분이 기술개발쪽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그러나 많은 중소기업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로 정부의 지원을 받아 어렵게 개발한 많은 기술과 제품들이 빛을 보지도 못하고 마케팅력 부족으로 사장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앞으로는 기술개발 지원에서 한발 더 나아가 마케팅 지원에 많은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