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밀레니엄 리더 (10)

커머셜데이터 진 암달 명예회장

 실리콘밸리에는 마치 벤처 창업 중독증에 걸린 사람처럼 보이는 기업가들이 많다. 그만하면 부와 명예를 한 손에 쥐고 인생을 즐기는 일만 남았다 싶은 나이에도 미래가 불투명한 벤처업체에 또 모험투자를 한다.

 70대에도 청년 같은 정열을 잃지 않는 진 암달 커머셜 데이터 서버 설립자 겸 명예회장(77)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22년 사우스다코타에서 태어난 암달은 2차 대전 복무기간 중 처음 본 컴퓨터에 매료된다. 그 후 사우스다코타 대학을 거쳐 52년 위스콘신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컴퓨터 프로그래머 1세대에 합류한다.

 암달은 젊은 시절을 PC의 역사와 함께 했다. 그는 52년 IBM에 입사해 메인프레임의 기본형을 디자인했다. IBM 704 개발을 주도했고 후에 「스트레치」라고 불리게 된 「데이터트론」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IBM 7030을 끝으로 IBM을 잠시 떠났던 암달은 60년대에 다시 돌아와 IBM 메인프레임 컴퓨터 시리즈 360의 대가가 된다. 스트레치를 변형한 시스템 360은 메인프레임 시대 최고의 걸작품으로 손꼽힌다.

 70년대가 되자 암달은 캘리포니아 서니베일에 자신의 회사 암달 코퍼레이션을 차리기 위해 IBM을 나온다. 그는 IBM의 라이벌 시스템으로 경쟁하는 대신 값이 더 싸면서 똑같은 소프트웨어를 돌릴 수 있는 클론제품을 만들었다. 모두들 곧 망할 거라고 수군거렸지만 그의 판단은 적중했다. 75년 출시된 암달 470 V/6는 IBM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암달의 두번째 도전은 80년 설립한 트릴로지 시스템이었다. 이미 화려한 성공을 거둔 뒤여서 신생업체에 돈을 대겠다는 투자자는 줄을 섰다. 그는 이번엔 IBM은 물론 암달 코퍼레이션까지 겨냥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엄청난 폭우로 칩공장의 공기정화장치와 클린룸이 망가져 창업자금 2억3000만 달러 중 3분의 1이 날아갔다. 암달은 남은 돈으로 컴퓨터 제조업체 Elxsi사를 샀지만 또 실패였다. 회사가 어렵게 되자 투자자들로부터 사임압력을 받게 됐고 회장직에서 물러난 암달은 또다른 벤처를 시작한다.

 87년 「and」와 「or」의 합성어 앤도어(Andor)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세번째 회사는 저가형 메인프레임 시장을 노렸다. 분석가들은 앤도어의 성공확률을 희박하게 봤지만 그는 중앙처리장치를 보드 하나에 집어넣음으로써 보드 여러 개를 사용하는 IBM보다 훨씬 싼 컴퓨터를 만들 속셈이었다. 암달은 좀더 작은 공간을 차지하며 열을 덜 발생하고 거대한 공기정화룸이 필요없도록 컴퓨터를 처음부터 다시 디자인했다.

 그러나 암달은 칩을 잘못 고르는 바람에 제품을 생산하기까지 2년을 소비했다. 그동안 IBM이 중간 크기의 신형컴퓨터로 선수를 쳤다. 그는 할 수 없이 주변장치를 만들어 시장에 내보냈고 91년에는 데이터 백업시스템 전문업체로 전락했다. 94년까지 적자가 불어났고 앤도어사는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그래도 진 암달은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96년 그는 네번째 회사를 설립한다. 커머셜 데이터 서버는 그가 직접 개발한 극저온의 CMOS 프로세서를 이용해 PC 기반의 메인프레임을 개발중이다. 메인프레임은 중앙집중시스템이고 PC는 개인컴퓨팅이니 누가봐도 물과 기름처럼 합쳐지기 힘들지만 암달은 제3의 영역을 만들고 싶어한다.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지칠 줄 모르는 그의 도전정신은 젊은 CEO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이선기기자 s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