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의 획기적인 발전은 종종 주변 학문의 도움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오늘날 첨단의학도 그 밑바탕에는 의용생체공학이 분명하게 자리잡고 있다.
단적인 예로 전산화단층촬영장치(CT)·자기공명영상진단기(MRI)·초음파영상진단기 등 전자의료기기가 없으면 종합병원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의용생체공학은 현대의학 발전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의용생체공학은 현대의학의 발전을 선도하는 도구를 제공하는 학문이다. 환자의 진료에 의용생체공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같은 역할증대의 가능성 앞에서 우리나라 의용생체공학은 산업계의 비판, 대학의 의용생체공학 육성 외면 등에 직면해 있다.
중외메디칼 관계자는 『우리나라 의용생체공학은 생체신호 등 특정분야에 치중돼 있는데 이보다는 각 학교별로 특화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메디슨 관계자도 『의용생체공학과 교수들은 전문인력 배출이 미흡하다』고 지적하는 한편 『보건복지부 장관의 잦은 경질로 의공학 육성 정책이 일관성을 잃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용공학교실 관계자는 『의공학 인력수요는 생명 및 의료장비와 연관해 지속적으로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진료를 통한 수익성이 없다는 단편적인 생각 탓에 의과대학측은 지원을 타교실보다 뒷전으로 미루고 있으며 임상의들도 의공학 교수가 진료를 도와주는 동반자가 아니라 일종의 테크니션으로 보는 경향이 아직까지 잔존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우리나라 의용생체공학이 발전하기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할 과제들이 있다. 의공학문의 독립성이 보장되고 교과과정의 개·증설(의학과 및 4년제 학부과정), 국산의료기기 제조업체의 국제경쟁력 강화, 임상의공학기사 또는 의공기사의 국가검정 및 법제화 등이 그것이다.
과거 우리나라 의과대학 또는 대학에서 의용생체공학 관련 학과를 운영하는 곳이 드물었지만 최근들어서는 의용생체공학 분야의 대학과 대학원이 늘고 있어 첨단전자의료기기 연구개발 인력의 인프라가 갖춰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의용생체공학의 역사가 짧은 탓인지 이같은 외형과 달리 속내를 들여다보면 아직까지 국내 대학의 의용생체공학 교육과정은 대학별로 무질서하게 각양각색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통일된 체계와 원칙을 설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제주의대 의공학교실 최민주 교수는 『의공학의 역사가 오래된 영국의 경우 의공학 전문인력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통일된 체계적인 전문인력 양성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며 『더 늦기전에 국내 의공학이 정상적인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의공학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과정의 체계를 세우는 작업이 지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정 학문분야가 발전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인력과 재정적 지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지원이 가능하기 위해서 선결돼야 할 조건은 해당분야와 직결된 산업체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80년대 전자 정보통신 산업의 눈부신 발전에 힘입어 전자공학 관련 학과들도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이처럼 우리나라 의용생체공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의료기기 관련 산업계의 발전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산업체의 발전은 해당분야의 인력수요를 창출하고 연구개발에 대한 필요성도 제고하기 때문이다.
대다수 공과대학은 의용생체공학 관련 학과를 설립하고 인력을 집중적으로 양성해야 한다. 우리나라 공과대학 학부과정에 의용생체공학 관련 학과를 두고 있는 곳은 전북대학교 공과대학 생체공학과, 서남대학교 공과대학 의공학과 등 두군데 정도며 정식학과 명칭이 의공학으로 되어있지는 않지만 전공이나 프로그램의 형태로 의공학이 운영되는 학교는 연세대 전기공학부, 고려대 응용전자공학과, 경희대학교 전기공학부 등으로 미약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에 반해 미국은 공과대학이 의용생체공학을 활발하게 이끌고 있으며 일정 규모의 공과대에는 대부분 의공학 관련 학과가 있고 또한 발전하고 있는 추세다. 일례로 바이오테크놀로지 분야는 미 MIT, 조직공학은 미 조지아공대, 의학물리는 영국 임페리얼공대 등 공과대에서 의용생체공학을 선도하고 있다.
민병구 서울의대 의용공학교실 교수는 『이같은 선진국과 우리나라 현실을 비교해볼때 공대내에 의용공학과 관련 교수가 거의 없는 우리 실정은 한마디로 난센스』라고 밝히며 『선진국은 공과대학이 의학을 선도하고 있다는 점을 중시해 우리도 의공학 관련 학과 설치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의용생체공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임상의·기초의 등 의학계 인물이 활발하게 이 분야에서 활동해야 한다. 특히 의용생체공학회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현재 20% 이하인 의학계 회원비율을 높여야 한다. 의학과 공학간의 긴밀한 협조체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의공학 분야의 발전을 위해서는 의공학 연구결과를 사용하는 임상의학 분야와의 올바른 관계설정이 중요하다. 즉 임상의학과 의공학은 소위 시너지 관계를 이뤄야 한다. 이것은 두 분야가 서로 발전되는 방향으로의 협력과 동반자 정신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임상의학은 환자에게 보다 양질의 진단과 치료를 제공하는 데 필요한 기술적인 요구를 제시하고, 의공학에서는 이러한 요구에 상응하는 해답을 제공하는 이상적인 협력이 이뤄진다면 결과적으로 임상의학과 의공학 양쪽 모두 윈윈전략으로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 김희찬 서울대 교수는 『임상의학이 필요없는 기술 개발이나 비과학적인 임상의학 기술개발은 모두 의미없는 노력이다』고 단언한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