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반도체 경기 불황을 이유로 국내 반도체 장비 및 재료업체들에 큰 폭의 가격 인하를 강요했던 삼성전자 등 국내 반도체 소자업체들이 최근 D램 가격 폭등으로 사상 최대의 수익을 챙기면서도 장비 재료업체들의 가격 현실화 요구에는 귀를 막고 있어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더욱이 일부 소자업체의 경우, 장비업체들이 내수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수출 자체를 공정 기술 유출을 이유로 원천 봉쇄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어 초기 단계에 접어든 국내 장비 재료업계의 해외 시장 진출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극심한 불황을 겪었던 지난해 「고통분담」을 이유로 대부분의 반도체 장비 및 재료업체들의 납품가격을 생산원가 이하 수준까지 인하시켰던 삼성전자 등 반도체 3사는 최근 장비·재료 업체들의 가격 현실화 요구를 대부분 묵살하면서 호황기의 과실을 독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가격인하 압력에 견디지 못해 공급가격을 생산원가 이하로 40% 가량 인하했던 반도체 핵심 재료업체인 A사는 최근 반도체 경기가 급상승세를 타면서 공급가격 인상을 요구하고 있으나 삼성전자 측이 5% 안팎의 가격 인상안을 제시, 협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생산량의 50% 가량을 삼성전자에 공급하는 이 업체는 지난해 삼성전자의 지나친 공급가격 인하로 수백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으며 지금 상황에서 최소한 20% 수준의 인상요인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지난해 삼성전자와 현대전자의 가격인하 압력으로 생산원가에도 못미치는 수준까지 공급가격을 30∼50% 내린 반도체 후공정 장비업체인 B사도 최근 가격 현실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삼성과 현대측은 가격 협상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같은 수요 업체 중심의 시장 구조를 벗어나기 위해 장비 및 재료업체들이 추진하고 있는 해외시장 개척 노력 자체를 소자업체들이 방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국내 반도체 장비업체인 C사는 동남아 지역에 장비 수출을 추진하면서 삼성전자 측이 자사의 공정기술이 유출될 우려가 있다며 수출 중단을 요구,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소자업체들이 국산 장비 및 재료업체들을 대상으로 저가격 공급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국산 장비·재료 업체들이 국내 반도체3사를 기반으로 성장, 시장 자체가 한정돼 있는 데다 제품 생산을 위한 초기 설비 투자 비용이 크기 때문에 공급가가 생산원가에 못미쳐도 공장 가동률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소자업체들이 악용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와 관련, 국내 장비업계의 한 관계자는 『어려운 시기에는 공존관계를 주장하며 상식 밖의 가격인하를 강요하면서 정작 호황기에 접어들자 모든 이익을 독차지하려는 것은 국내 반도체 산업의 균형있는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결국 차세대 장비를 위한 연구개발 투자를 하지 못할 경우 장기적으로는 소자업체들에게 손실이 돌아갈 것』이라고 강한 불만을 털어놨다.
<최승철기자 scchoi@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