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창간17주년> 정보의 DNA "비트" 시대

 디지털이 세상을 바꾼다. 이제 아톰(Atom)의 시대는 가고 비트(Bit)의 시대가 왔다. 0과 1의 조합인 비트가 모여 디지털을 이루고, 디지털이 네트워크의 공간에 새로운 문화, 새로운 삶을 만든다.

 세계적인 석학들은 새 밀레니엄을 아날로그시대의 종말과 비트시대의 개막으로 설명한다. MIT 건축학 교수 윌리엄 미첼은 「비트의 도시」에서 아톰과 비트의 세계가 어떻게 다른지 실감나게 보여준다. 비트의 도시에서는 전자 광장(Agora)을 사이보그 시민들이 활보한다. 그들은 면제품처럼 몸에 딱 맞는 전자장치를 입고 있다. 헤드폰부터 센서장갑, 첨단 운동화가 온몸을 감싼다.

 도시는 거대한 전자무대다. 그리고 네트워크는 이 도시의 새로운 신경세포다. 말과 글, 음악, 눈앞의 장면들은 비트로 변화돼 네트워크가 깔린 곳이면 어디로든 흘러간다. 육체의 네트워크는 건물 네트워크에 연결되고, 건물은 다시 공동체 네트워크로, 공동체는 또 지구 네트워크로 이어진다.

 모든 것은 새롭게 정의된다. 인터넷의 발달로 기하학은 의미가 없어지고 공간은 반(反)공간적이 된다. 이제는 접촉 대신 연결, 현장이 아니라 인터넷이다. 학교는 가상 캠퍼스로, 물리적 거래는 전자거래로 바뀐다.

 저명한 미래학자이자 MIT 미디어랩 소장인 니컬러스 니그로폰테는 미첼에 앞서 디지털시대를 비트의 시대로 정의했다. 그는 저서 「디지털이다(Being Digital)」에서 비트를 「색깔도 무게도 없지만 빛의 속도로 떠다니는 정보의 DNA」라고 표현한다. 물질의 최소 단위를 아톰이라 한다면 비트는 정보의 구성요소다. 이제 비트는 아톰을 대신해 세계를 움직이는 기본단위가 됐다고 니그로폰테는 역설한다.

 그에 따르면 아톰에서 비트로의 변화는 「돌이킬 수도 없고 멈출 수도 없는 것」이다. 디지털 세상은 우리가 일하는 방식,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방식을 변화시킨다. 니그로폰테는 비트의 삶에 대해 다음과 같은 그림을 그린다.

 디지털시대가 되면 추운 겨울 보스턴의 거실에 앉아 전자창문을 통해 스위스 알프스산을 바라보며 젖소의 목에서 딸랑거리는 방울소리를 듣고 여름날의 디지털 건초 내음을 맡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육군 지휘관이 정찰병을 보내듯 정보를 대신 수집해줄 디지털 에이전트를 거느리게 된다. 외출에서 돌아오면 VCR는 『집에 안계신 동안 텔레비전을 5000시간 봤어요. 그 가운데 주인님이 좋아할 만한 프로그램 6편을 골라놨죠. 고등학교 동창이 투데이쇼에 출연했더군요. 볼 만한 자연 다큐멘터리도 있어요』라고 말한다. 전화기는 결코 따르릉거리며 울리는 법이 없고 디지털 집사가 먼저 누구인지 알아본 다음 주인과 가장 가까운 문고리가 『잠깐 기다리세요』라며 전화를 바꿔준다. 우유가 떨어지면 냉장고는 귀가할 때 우유 사오는 것을 잊지 말라고 자동차에게 주문을 한다.

<이선기기자 s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