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TV나 오디오를 중심으로 급진전되고 있는 가전제품 디지털화가 냉장고나 세탁기·전자레인지 등 그동안 디지털화와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여겨져온 백색가전 제품으로도 급속 확산되고 있다.
사실 그동안에는 냉장고, 세탁기 등의 백색가전은 AV제품과는 달리 디지털화가 상당히 더디게 진행돼온 상태였다.
백색가전 제품의 경우 디지털과는 거리가 있는 생활용품인데다 국가마다 생활양식이 다르기 때문에 글로벌화를 위한 네트워크 기술개발이 어려워 업체 대부분이 이를 도외시해왔기 때문이다.
몇년 전 국내 가정의 생활문화를 크게 바꿀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홈오토메이션이 실패한 것도 사실은 백색가전 디지털화의 근간이 되는 네트워크 기술 부재 때문이었다. 특히 백색가전의 경우 그 어떤 제품보다도 가격경쟁이 치열, 디지털기술을 접목할 경우 가격이 크게 높아져 채산성 악화를 초래한다는 점도 디지털화를 어렵게 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물론 전등이나 에어컨·전자레인지 등에 이어 최근 냉장고와 세탁기에도 본격 적용되고 있는 인버터기술도 일종의 디지털기술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인버터기술은 에너지절감을 위해 적용해온 것이 대부분이라 데이터 저장이나 정보교환을 위한 디지털화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미국과 일본·유럽을 중심으로 인터넷 냉장고나 인터넷 전자레인지처럼 디지털기술을 접목한 정보화 제품들이 속속 등장하는 등 상황이 많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미국 NCR가 홈뱅킹·홈쇼핑·전자우편 기능을 제공하는 지능형 전자레인지 「마이크로웨이브 뱅크」를 발표한 데 이어 미국 프리지데어는 인터넷에 접속, 터치스크린 방식의 모니터와 바코드 스캐너를 장착, 온라인으로 식품정보와 조리방법을 알려주며 TV 시청과 전자우편 기능까지 제공하는 냉장고를 개발해 선보인 것이다.
이같은 제품은 아직 시험단계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최근 들어 백색가전 제품에 대한 네트워크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어 앞으로 백색가전 제품에 대한 디지털화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특히 PC와 각종 가전제품들을 곧바로 연결해 서로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가정내 네트워크 규격인 「IEEE1394」의 경우는 업계표준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지고 있으며 그동안 서로 다른 전송매체와 OS로 인해 호환이 불가능했던 것을 가능케 하는 미들웨어가 등장, 다양한 네트워크를 연결할 수 있는 공동기반이 되고 있다. 이같은 네트워크기술 발달은 백색가전 제조업체들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예를 들어 그동안에는 냉장고나 세탁기·전자레인지 등 인터넷제품을 생산하려면 이들 각각에 PC를 탑재해야만 했다. 이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기형제품이라 제조업체의 채산성을 극도로 악화시키기 때문에 실험실에서나 가능한 제품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기존 냉장고에 PC나 가정내 세트톱박스 등에 연결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부착하는 것만으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거나 다른 정보기기와 연결할 수 있다면 사정은 크게 달라져 업체들이 본격 양산에 나설 수 있는 경제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국내 가전업체들도 인터넷 활용을 기본으로 삼는 등 백색가전 제품의 디지털화에 이같은 네트워크 인프라를 전제로 삼고 있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대우전자는 지난해부터 식품에 붙어 있는 바코드를 판독해 저장중인 식품에 대한 수량과 보관기간 등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냉장고나 여기에 인터넷 검색기능까지 첨가해 식품별 조리법을 다운로드받아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도록 한 전자레인지, 통신기능을 부가해 기상청과 정보를 주고 받으며 실내 공기를 항상 쾌적한 상태로 유지해주는 에어컨 등 다양한 제품개발에 나섰다.
LG전자도 디지털경영의 일환으로 세탁기 신제품에 조작 패널 디스플레이에 세탁과정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기능을 탑재하는 등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일부 백색가전 제품에 디지털 기술을 적용한 데 이어 홈어플라이언스 사업본부 차원에서 모든 백색가전 제품을 디지털화하기 위한 기획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또한 지난해 인터넷 전자레인지를 개발한 데 이어 앞으로 인터넷 냉장고 등 백색가전 제품에 대한 디지털화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국내에도 그동안에는 전혀 불가능하게만 여겨왔던 백색가전 제품 정보화시대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