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창간17주년> PC산업 대외경쟁력

 PC강국을 꿈꾼다.

 국산PC가 대규모로 수출되면서 세계 PC시장의 판도를 변화시키고 있다. 컴팩컴퓨터·휴렛패커드(HP)·

델컴퓨터·IBM 등 흔히 공룡에 비유되는 거대한 컴퓨터업체들이 장악한 세계 PC시장에서 국산 PC가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면서 이들을 위협하고 있다.

 국내업체들이 올해 생산할 총 PC 물량은 730만대(추정치) 정도로 올해 1억대로 예상하는 세계 PC시장에서 점유율이 10% 수준까지 육박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지난 97년만 해도 국산PC는 세계 PC시장에서 2%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던 점을 감안하면 괄목할만한 성장이 아닐 수 없다. 실례로 삼보컴퓨터는 미국시장 진출 4개월만인 지난 4월 컴팩컴퓨터와 HP에 이어 미국 PC소매시장에서 시장점유율 9.2%로 3위를 차지했으며 7월에는 19.2%의 시장점유율을 보이면서 확고한 3위자리를 다졌다. 또 삼보컴퓨터는 일본시장에서 4위권에 진입하는 등 뚜렷한 성과를 달성하고 있다.

 여기에 대우통신이 최근 해외 대형 유통업체들과 총 400만대 규모의 수출계약을 체결, 세계 10대 PC생산업체로 도약을 다지고 있으며 LG전자와 삼성전자는 각각 애플컴퓨터의 i맥컴퓨터 수출, 노트북PC 수출을 기반으로 세계시장 수위권 진입을 노리고 있다.

 지난 90년대 초 연간 2억달러어치를 수출하면서 세계시장을 주도했던 국산 PC가 과거의 영광을 회복할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세계 PC시장 판도를 변화시키고 거대 공룡기업으로부터 견제를 받을 만큼 급성장한 국산PC의 이같은 성장은 강력한 대외경쟁력을 바탕으로 이뤄진 것인가.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PC는 외형상으로 반도체와 모니터에 이어 국내 산업을 이끌 수출효자 품목으로 급부상하고 있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질적 기반 없이 양적 팽창 위주로 성장했다는 것이 관련업계의 중론이다.

 이와 관련해 반도체의 경우 국내업체들이 지난 80년대 이후 세계 반도체시장을 선도하고 있으며 모니터의 경우 일본·대만과 함께 세계시장을 3개로 분할 점령하고 있다. 반도체와 모니터는 이미 기술·가격·품질 등 모든면에서 뛰어난 경쟁력을 확보한 제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PC의 경우 이와 크게 구별된다. 일반적으로 상품의 대외경쟁력은 제품의 품질, 가격, 기술, 마케팅력, 원가절감, 브랜드 이미지 등 다양한 요인으로 결정된다. 하지만 국산PC의 경우 가격을 제외하고는 내세울만한 것이 없다. 국산PC가 해외 대량 수출이 가능했던 것이 저렴한 가격에서 비롯된 만큼 국내 PC제조업체들의 실속은 그다지 크지 않은 실정이다.

 삼보컴퓨터의 경우 올상반기에 총 100만대 규모의 PC를 수출한 데 힘입어 8614억원의 매출액을 달성했으나 경상이익은 190억원에 불과했으며 지난해부터 대규모 수출을 추진한 대우통신도 올상반기에 정보통신부문을 제외한 PC부문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미국 인터넷뉴스서비스 C넷 최근자는 이와 관련, 미국 컴팩컴퓨터의 경우 영업비용과 고정비용 등을 제외한 PC 판매 마진은 20%대 수준에 이르고 있으나 삼보컴퓨터의 e머신즈는 10%대 수준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삼보컴퓨터도의 미국·일본시장에서의 성공은 일반 소매시장 가운데에서도 500달러 이하의 초저가PC분야에 한하고 있으며 중·고가 또는 기업용 PC시장에서의 실적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대우통신도 최근 400만대분의 수출계약을 추진하면서 대부분 399달러와 499달러의 초저가PC를 주력으로 내세웠다.

 국내 PC업계의 대외경쟁력이 미약한 것을 증명하는 또 다른 요인은 자가 브랜드 수출보다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방식의 수출비중이 훨씬 크다는 데 있다. 삼보컴퓨터의 「e타워」를 제외하면 대우통신의 데스크톱PC, LG전자의 i맥컴퓨터, 삼성전자의 노트북PC 등이 대부분 OEM방식으로 수출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 95년 「AST」 인수 이후 자가 브랜드를 통한 해외시장 개척을 추진, 국내에서 큰 기대를 모았으나 결국 AST가 매각되면서 쓰라린 실패를 맛봐야 했다.

 아울러 기술적인 면에서도 국산 PC는 외국 주요 PC업계 제품에 비해 우위성을 확보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PC가 품목 특성상 기술발전이 빠르게 진행되기는 하지만 이는 PC 제조기술 분야보다는 부품과 주변기기 분야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업체별 품질과 기술의 우위성 및 차별화가 쉽지 않은 요인도 있다.

 마케팅력의 부재 또한 국산 PC의 대외경쟁력 미약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세계 5위 PC업체인 AST를 인수한 이후 세계 PC업계는 바짝 긴장했으나 삼성전자의 AST는 영업개시 1년만에 경영난이 극도로 심화돼 결국 매각됐다. 업계에서는 이에 대해 삼성전자의 현지 작업 실패와 마케팅력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국산PC가 현재까지 외형 위주의 성장을 달성했다는 평가속에서도 앞으로 국내 산업을 선도할 효자 품목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기대는 여전히 크다.

 우선 일부 제품이기는 하지만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PC 부품과 주변기기 산업이 잘 발달했다는 점이다.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CD롬 드라이브, 모니터, 메모리(반도체) 등은 국내 주요업체들이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만큼 이를 잘 활용할 경우 원가절감을 통한 PC 가격경쟁력 확보에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삼보컴퓨터의 「e타워」 성공도 이같은 국산 부품의 바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두번째로 국내 PC업계가 이밖에 현재 OEM 위주의 수출을 전개하고 있으나 국내 PC업계가 자가 브랜드 수출을 크게 강화하고 있다는 것도 국산 PC의 대외경쟁력 강화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자가 브랜드 수출이 늘어날 경우 영업이익이 극대화되는 데다 회사와 브랜드 이미지를 크게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업계가 세계 PC시장 공략을 본격화할 경우 마케팅력의 부재로 자칫 실패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록 마진이 작고 회사 이미지 제고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안전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OEM방식의 수출이 우선 유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번째로 그동안 취약했던 국내 PC업계의 마케팅력이 초저가PC 수출확대를 통해 자연스럽게 강화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국내 PC업계가 초저가PC시장을 중심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하고 있으나 이는 곧 대량생산에 따른 원가절감, 브랜드 제고의 효과를 볼 수 있으며 아울러 다양한 마케팅 노하우가 쌓이게 마련이다.

 한 PC제조업체 관계자는 『국산 PC는 세계 주요 메이커업체들이 큰 위협을 느끼고 세계 주요 언론에 자주 오르내릴 만큼 양적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며 『여기에 가격·품질면에서 대외경쟁력을 갖춘다면 세계 PC시장 주도가 머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영복기자 yb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