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천년 맞이 "원로와 신세대 경영인의 만남"
새 천년의 문턱에 선 우리는 미증유의 변화를 겪고 있다. 지난 천년간 계속된 농경사회와 산업사회의 패러다임이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소위 정보사회로 일컬어지는 새로운 사회는 디지털이라는 개념이 등장, 아날로그로 대변되는 기존의 모든 가치와 질서에 변화를 강요하고 있다. 이제부터는 누가 이 밀레니엄 패러다임을 선점하고 재빨리 적응하느냐가 크게는 국가, 작게는 개인의 운명을 결정짓게 될 것이다. 정보화 불모지였던 한국을 오늘날 세계적 정보대국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주역 가운데 한명인 이용태 정보산업연합회 회장과 디지털세대 경영인의 대표격인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사장이 원로와 신세대 대담을 통해 다가올 새 천년의 모습과 우리의 대응자세를 제시해 본다.
<편집자>
참석자
이용태 한국정보산업협회장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사장
* 사회=김경묵 본지 정보통신산업부 차장
△이용태 회장(이하 이 회장)=90년대 이후 정보시대라고 말하지만 불과 20년 전만 하더라도 정보화의 중요성에 대해 깨닫지 못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경제개발 5개년 2차 계획이 한창이던 70년대 초만 해도 대만에서 선풍기를 수입해 내수시장에서 팔거나 일본의 저급기술을 들여다 값싼 노동력으로 제품을 생산, 외국 종합상사의 도움으로 수출하던 시절이었어요. 때문에 정보화라면 우리나라와 관련이 없는 먼나라 이야기처럼 인식됐죠.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어요. 정보화의 척도로 국가경쟁력을 가늠하는 디지털시대가 도래했다는 점에서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이재웅 사장(이하 이 사장)=오늘날의 산업환경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사뭇 달라졌다고 봅니다. 당시에는 소프트웨어는 물론이고 하드웨어적인 기반조차도 마련돼 있지 않은 시점이어서 생존과 직결되는 당장의 경제발전 이외에는 신경쓸 만한 겨를이 없었죠. 이제는 이미 마련된 하드웨어에 경쟁력 있는 소프트웨어만 갖추면 되므로 한결 간편해졌어요.
△이 회장=60년대 말 미국 유학을 마치고 국내에 돌아와 정부에 정보화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하고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우이독경(牛耳讀經)이 돼버렸고 한국데이터통신을 설립하고 사장으로 재직하던 82년 경영방침을 미래 정보화에 초점을 맞췄을 때도 임직원이 따라주지 않아 마음고생이 심했어요.
하지만 지금 이재웅 사장과 같은 신지식인들이 많이 나와 다가올 새 천년에 대한 전망은 밝다고 봅니다.
△이 사장=많은 콘텐츠 개발자들이 소프트웨어 개발에 몰두할 수 있게 된 것은 지난 10여년간 정보 인프라 구축에 헌신적으로 노력하신 선배들의 덕분입니다. 구축된 정보 인프라를 토대로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었기 때문에 후배들은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저를 포함한 신세대 기업인들은 인터넷산업이 예상할 수 없을 만큼 급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초래되는 문화적 지체 현상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이 회장=매우 좋은 지적입니다. 과거에는 정보화 자체에 대한 인식부족에서 오는 장벽이 산재했지만 지금은 정부와 기업, 국민 모두가 정보화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 매우 고무적 현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시행착오를 줄이고 짧은 시간 안에 최대의 효과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과 정책보완이 필요합니다. 물론 현재의 정부는 과거 어느 정부보다도 정보화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몇 가지 사항을 보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대학입시에 컴퓨터 과목을 추가해 자라나는 꿈나무들을 정보기술(IT)업계의 재목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 고속인터넷 보급에 박차를 가해 향후 1∼2년 안에 고속통신 인프라를 구축하고 멀티미디어 콘텐츠 대국건설을 위한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는 경제에 디지털이란 단어를 붙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왔습니다. 미국 상무부가 매년 발표하고 있는 디지털 경제에 대한 보고를 보면 경제성장률 3%, 물가인상률과 실업률이 3%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모두 디지털 경제의 덕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거 경제는 호황 뒤에는 반드시 불황이 닥치는 식의 순환곡선을 그려왔지만 최근들어 이론적인 틀에서 벗어나 지속적인 성장을 구가할 수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디지털 경제시대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죠.
또한 미국의 산업구조를 분석하면 전체 산업 가운데 디지털 및 정보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3분의 1에 달하고 자본투자의 절반 이상은 정보산업에 투자되고 있다는 통계자료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투자에 대한 성과가 가시화되기까지는 1년 이상이 소요되지만 정보화에 투자하면 3개월만에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디지털은 산업 전체의 패러다임을 뒤바꾸어 놓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장=디지털 경제, 네트워크 경제란 말은 오늘날의 시대를 가장 잘 표현한 용어인 것 같습니다. 미디어와 시장이 통합됨에 따라 생산자 위주의 시장은 소비자 위주로 바뀌었고 인터넷을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 소비자와 소비자가 손쉽게 만날 수 있는 장이 열리게 된거죠. 최근 일부 선진기업들이 자재도입 및 상품판매의 전과정을 인터넷으로만 처리하면서 막대한 비용절감 및 이익증대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인터넷은 최선의 상거래 방식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 회장=과거사를 돌아볼 때 산업발전에는 반드시 부작용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인터넷 역시 사회경제를 근본적으로 변혁하는 주요 통신수단으로 자리잡고 있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악용할 경우 개인의 생활파괴나 국가를 마비시킬 수도 있을 정도로 인터넷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하지만 인터넷 자체가 악(惡)이 아닌 만큼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에 각별한 관심을 갖는다면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봅니다.
이와 함께 인터넷은 수많은 기회요인을 제공합니다. 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친구를 쉽게 사귈 수 있게 해주며 국가간의 장벽도 허물어줍니다. 이외에도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기업의 비용을 절감해주거나 시간절약의 효과도 가져다주는 참으로 값진 통신수단이죠.
반면 상당수의 위협요인도 함께 제공합니다. 무역장벽의 철폐로 시장보호기능이 저하돼 외국자본에 완전히 노출되거나 성인물의 범람으로 인한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역기능이 있다고 해서 순기능을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역기능의 폐해보다 순기능이 가져다주는 혜택이 많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개방적인 자세가 요구됩니다.
△이 사장=이 회장님께서는 우리나라에 PC를 도입하고 이를 대중화시킨 분입니다. 삼보컴퓨터는 국내 최대 전문기업으로 위상을 확고히 하고 있고 최근에는 e머신스를 통해 세계시장에서도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IT기업의 효시격인 삼보컴퓨터를 통해 후배들이 배울 점이 많은 것 같은데 경험을 들려주시지요.
△이 회장=과거와 현재의 기업환경 변모양상은 변화가 아닌 개혁이라고 표현해야 옳을 정도로 많이 바뀌었습니다. 삼보컴퓨터가 한창 잘나가던 80년대 후반에 하루는 사장이 절 찾아와 삼보컴퓨터를 매각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을 하더군요. 이유를 물었더니 100억원의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는 30억원의 운영자금이 필요한데 모든 은행이 담보부족을 이유로 대출을 꺼려 공장을 돌릴 자금을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얼마든지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시대가 왔습니다. 불과 5∼6년 전만 하더라도 아이디어는 있는데 돈을 구하지 못해 낭패를 봤지만 오늘날은 돈은 있는데 아이디어가 없어 고민할 정도예요.
△이 사장=이 회장님 말씀대로 최근들어 벤처캐피털과 같은 벤처기업 대상의 투자전문기업이 생겨나면서 투자유치가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또 벤처기업들은 디지털시대·정보시대에 대비해 연구·개발·마케팅 등 다방면에서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벤처기업에 비해 국내 대기업의 기업활동은 개선해야 할 여지가 많다고 생각됩니다.
최근 국내 대기업들은 비용절감의 수단으로 인터넷을 적극 활용하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화시대 경쟁력 확보수단이 아닌 기존 기업활동의 단순한 개선수단으로 만족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아쉽습니다.
쉬운 사례로 최근 일부 대기업들이 과감한 투자를 통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개발하기보다는 해외 유명 콘텐츠업체들과 제휴해 기술을 도입·활용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어요. 이 경우 문화종속의 폐단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해외시장 개척은커녕 몇 년 안에 우리의 안방마저 외국 업체에 내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겁니다.
△이 회장=그 점에 대해서는 저도 동감입니다. 대기업들은 손쉬운 방법으로 남의 기술을 빌려와 쓰겠다는 생각보다는 기업규모에 맞는 투자를 통해 한국적이면서 경쟁력을 갖춘 기술개발에 노력하겠다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대기업들과는 별개로 벤처기업들은 벤처기업 나름대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미국에서 일고 있는 경제변혁은 제너럴모터스·코카콜라·록히드마틴·보잉과 같은 대기업이 아닌 야후·아마존·시스코 등과 같은 IT 벤처기업 주도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라고 봅니다. 경쟁력 있는 국가 건설은 벤처기업의 손에 달려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국내 벤처기업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이 사장=정보화에 대한 인프라 수준이나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환경 등을 고려할 때 지금은 축복받은 시대입니다. 특히 국내 상당수의 벤처기업들은 기존 세대를 능가할 만큼, 세계 어느 업체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아이디어와 기술력, 패기 등으로 충만돼 있습니다. 하지만 벤처기업이기 때문에 부족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어요. 그것은 바로 오랜 비즈니스 경험을 통해 축적해온 노하우가 없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동안 정보산업의 기반을 다져온 선배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기성세대의 비즈니스 노하우와 신세대의 아이디어와 패기가 합쳐져 서로 끌어주고 밀어준다면 세계 초우량기업, 세계 초우량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리=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