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창간17주년> SW 해외진출 전략

 「소프트웨어(SW)의 해외판매는 TV수출과 다르다.」

 올들어 국산 SW의 해외진출이 가속되고 있지만 SW수출이 당초 기대했던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다각적인 수출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국내업체들이 선택했던 방법으로는 미국 등 현지시장의 두꺼운 벽을 뚫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업체들이 잇따라 발표하는 SW수출규모는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속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실제 성사된 규모는 많아야 수억원 정도에 불과할 뿐 대부분 가능성만을 나타낸 수치였다. 또 이렇게 부풀려진 수치는 결국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처럼 SW수출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해외진출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의식부터 문제가 있다. SW의 해외진출은 기본적으로 하드웨어를 판매하는 것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며, 단기간에 승부짓기도 어렵다는 것이 마케팅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국내 업체들이 그동안 마치 엄청난 수출을 달성할 것처럼 말했던 것은 현지사정은 전혀 모른 채 해외 파트너의 말만 믿은 결과다.

 SW수출은 해외 현지시장에서 신용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이다. 장세탁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진흥본부장은 『 미국시장에서 신용없이는 결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에 여러 단계를 거치는 신용쌓기 과정에 참여해 차근차근 절차를 밟아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SW수출에서 단기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얘기다.

 현지진출 방법에도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국내 업체들이 흔히 써온 SW수출 방법은 현지 유통망을 통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방법과 전시회 참가를 통해 현지의 관련업체와 연결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국산 SW를 외국시장에 판매하는 것은 실제 제품이 우수하다고 해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해외소프트웨어지원센터의 박승진 소장은 『태국 등 개도국의 SW업체가 용산에서 SW를 판다고 할 때 과연 그 제품을 살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고 반문한다. 따라서 제품의 성격이나 회사 규모에 따라 달리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선 유통채널을 통한 판매는 소비자를 상대하는 제품만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경우 제품이 유통망을 통해 제대로 뿌려지기까지는 상당한 마케팅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정보기술(IT) 솔루션의 경우에는 경쟁자나 시장을 주도하는 업체와 전략 제휴해 진출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이 경우 관련 기술의 공동개발, 매각 또는 컴포넌트 형태로 판매하는 방식을 떠올릴 수 있다.

 가장 적극적인 방법으로는 미국에서 직접 펀딩을 받아 나스닥에 상장하는 IPO(Initial Public Offering)가 있다. 그러나 이 경우 3∼5년의 기간과 마케팅 등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성공하면 큰 이익이 돌아오지만 국내 벤처기업이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모델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국내 SW업계의 현실을 감안할 때 전략 제휴 방안이 현재 가장 유력한 모델이라는 평가다. 해외시장을 뚫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브랜드로 해외에 진출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한국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후 미국에 진출한다는 전략으로는 성공하기 어려우며 제품개발 단계에서부터 아예 미국시장의 입맛에 맞게 구성해야 한다. 제품이나 기업환경에 이르기까지 글로벌마인드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효율적인 해외시장 진출은 제품 라이프사이클과 관련이 있다. 시장에 적기에 내놓는 것이 중요하며 인수합병(M&A) 등 어떤 방식으로 공급할 것인가 하는 전략도 단기간에 결정해야 한다.

 특히 제품 측면에서는 너무 테크놀로지만 강조해서는 안된다고 관계자들은 충고하고 있다. 현지 시장동향이나 경쟁관계 등을 면밀히 분석하고 시장수요에 맞는 제품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용하지도 않는 기능을 잔뜩 집어넣어 너무 무겁고 사용자 편의성도 떨어지는 제품은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무적으로 국내 벤처기업이 보강해야 할 것 중 하나가 도큐멘테이션 기법이다. 도큐멘테이션은 기업의 비즈니스 플랜이나 기술을 전달하는 과정이다. 국내 벤처기업은 바로 도큐멘테이션과 프레젠테이션 능력이 미국업체들에 비해 뒤져 실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외 마케팅 담당자들은 말하고 있다. 도큐멘테이션이 미국의 비즈니스 관행이라 할 때 이 관행에 동떨어져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가능성있는 국산 소프트웨어는 어떤 것이 있을까. 마케팅 전문가들이 말하는 해외진출 가능분야는 현재 국내 산업이 활성화해 경쟁력을 갖고 있는 산업과 관련있는 것들이다.

 우선 들 수 있는 분야가 인터넷 SW. 세계적으로 워낙 주변산업이 빨리 성장하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에 대한 수요가 많아 독특한 기술과 아이디어만 있으면 얼마든지 외국에서도 먹힐 수 있기 때문이다.특히 국내 인터넷 시장도 최근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면서 관련 소프트웨어 기술도 급성장, 어느 분야보다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통신용 SW도 경쟁력있는 분야 중 하나다. 콜센터나 컴퓨터통신통합(CTI), 개인휴대단말기(PDA) 등 인터넷과 통신을 연결하는 소프트웨어는 매우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전통적으로 강점을 갖고 있는 가전분야나 임베디드SW도 비슷한 예다. 디지털TV 등 최근 급속히 성장하는 정보가전 분야는 충분한 시장이 있다.

 지난해 디지털캐스트가 MP3플레이어를 개발, 회사를 미국 다이아몬드멀티미디어에 매각할 수 있었던 것이나 현재 우리나라가 제2의 워크맨으로 불리는 MP3플레이어 산업을 주도하는 것은 좋은 사례다. 이밖에 CAD/CAM, 자동화용 SW 등 제조관련 SW는 특히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소프트웨어 해외진출을 효율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는 정책적인 변화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우선 SW수출이 현지 크레디트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 할 때 이런 과정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틀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에 필요한 현지 회사들과의 전략 제휴를 적극 추진하는 한편 미국의 경우 벤처캐피털이 벤처기업의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우호적인 벤처캐피털을 만드는 작업도 필요하다.

 현재 중소기업청에서 한국정부와 외국사가 공동투자한 벤처캐피털 설립을 추진하고 있고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이 미국 보스턴에 외국사 중심의 벤처캐피털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바람직한 일이다.

 이와 함께 현지마케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글로벌비즈니스의 성공은 기술도 중요하지만 대부분 마케팅에서 결판이 난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실리콘밸리에 설립된 해외소프트웨어지원센터(KSI)가 입주업체를 전면 교체하면서 그동안 연구개발 중심에서 마케팅 중심으로 전환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글로벌 마케팅의 근본은 현지에 비즈니스를 같이할 정보 및 휴먼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작업이다. 현지밀착형 마케팅을 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국내 벤처기업 육성정책도 양적 팽창만 가져오는 단순 창업지원 중심에서 유망업체 설립에서 마케팅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집중 지원함으로써 질적 향상을 가져올 수 있도록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창호기자 ch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