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키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방끗 웃으면서 최고의 등급을 데려다 달라고 했다. 그리고 회사에서 제공한 카드로 결제를 했는데, 종업원이 나가고 나서 우리는 술을 마시면서 게이샤를 기다렸다. 이십여분이 지나서 방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조금 전의 중년 여자가 들어와서 게이샤가 왔다고 전했다. 그리고 뒤이어 기모노 차림을 한 젊은 여자가 들어왔다. 그녀의 한 손에는 샤미센 가방이 들려 있었는데, 화장을 짙게 해서인지 얼굴이 마네킹처럼 뚜렷하고 예뻤다. 마치 얼굴을 조각으로 빚어놓은 것 같았고, 눈이 커서 매우 아름다운 인상을 주었다. 최고의 등급다운 외모였는데, 여관 종업원은 그녀가 요코에게서 사사를 받은 수제자라고 칭찬을 하였다. 요코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으나, 아마 이곳에서 샤미센을 아주 잘하는 달인으로 알려진 인물일 것이다.
『인사 드립니다. 누마몬입니다.』
여자는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다다미를 짚으면서 절을 하였다. 여관 종업원이 나갔다. 게이샤는 가방에 넣은 샤미센을 꺼내 다다미 위에 놓았다.
『밖이 춥지요? 술을 한 잔 하겠소?』
나는 내가 마신 빈 잔을 그녀에게 내밀면서 술을 권했다. 게이샤는 두 손으로 술잔을 받더니 추켜들었다. 나는 그녀가 들고 있는 잔에 술을 따랐다. 가까이에서 보니 여자는 생각보다 나이가 어려 보였다. 갓 스물을 넘은 나이로 보였는데, 어쩌면 미성년자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의 몸에서는 향수 냄새와 함께 분 냄새 같은 화장품 냄새가 풍겼다. 여자는 술을 받고는 고맙다고 말하고 그것을 마셨다.
『이번에는 내가 따르는 술을 받겠어요?』
게이샤가 잔을 비우자 스즈키가 말했다. 게이샤는 전혀 거절하지 않고 다시 술잔을 추켜들었다. 그리고 술잔에 술이 가득 차자 그것을 단숨에 마셨다. 그 여자가 술을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술을 권하면 거절하지 않고 받는 것이 그녀들 세계의 예절인지 알 수 없었다. 게이샤는 빈 술잔을 나에게 내밀어 술을 따라주었다. 여자가 무릎을 꿇고 술을 따르자 왠지 술맛이 나는 기분이 들었다. 여기는 아직 기생이라는 개념의 전통적인 작부가 남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시골의 다방 여자 종업원이 티켓을 끊어 장사하는 일이 전국적으로 번지게 된 것이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홋카이도의 게이샤를 티켓 끊고 불렀던 일이 연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