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컴퓨터는 하드웨어의 기술적 구조에 따라 벡터형과 병렬형으로 구분된다. 또 병렬형 슈퍼컴퓨터는 다시 대칭형 다중처리(SMP) 방식과 초병렬처리(MPP) 방식으로 나뉜다.
벡터 방식은 최초의 슈퍼컴퓨터인 「크레이(Cray)1」에 처음 채택된 이후 슈퍼컴퓨터 설계의 주류가 됐다. 벡터형 슈퍼컴퓨터는 한마디로 벡터 연산방식의 고성능 프로세서를 특수 제작해 이를 장착한 컴퓨터를 말한다. 벡터형 슈퍼컴퓨터는 꾸준히 연산속도가 향상되면서 슈퍼컴퓨터의 전형으로 정착돼 왔다. 그러나 벡터형은 90년대 들어 프로세서 개발에 비용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프로세서 자체에 물리적 한계가 나타나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에 반해 병렬형 슈퍼컴퓨터는 전용 프로세서가 아닌 범용 프로세서를 하나 이상 연결해 성능향상을 꾀하는 방식이다. 병렬형은 다시 다수의 프로세서가 메모리를 공유하는 방식(SMP)과 각각의 프로세서가 별도의 전용 메모리를 갖는 방식(MPP)으로 구분된다.
병렬형은 벡터형에 비해 가격이 월등이 싸고 확장성이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다. 전용 프로세서 개발없이 이미 개발돼 나와 있는 범용 프로세서를 사용하는데다 프로세서가 증가할수록 성능이 향상되는 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방식은 80년대 중반 이후 싱킹머신스와 인텔사 등이 선을 보여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두 회사는 병렬처리를 지원하는 애플리케이션의 절대 부족으로 크게 고전했다.
90년대 이후 IBM·선마이크로시스템스·HP 등 업계를 주도하고 있는 업체들이 명령어축약형컴퓨팅(RISC) 프로세서를 기반으로 한 MPP 및 SMP형 고성능 컴퓨터 시장에 진출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병렬처리 프로그래밍 기술과 지원 애플리케이션들이 쏟아지면서 슈퍼컴퓨터 시장이 아연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세계 슈퍼컴퓨터 시장은 병렬 방식이 주류로 부상한 상황이다.
99년 6월판 「톱500」 리스트를 보면 MPP 방식의 슈퍼컴퓨터가 203대, SMP가 239대, PVP가 58대로 나타났고 특히 전통적인 벡터 방식은 93년 이후 매년 500위권에서 사라져가는 것을 보여준다.
벡터형 슈퍼컴퓨터의 쇠퇴는 크레이리서치·컨벡스 등이 90년대 중반 SGI·HP에 합병되면서 가속화됐다. 크레이리서치를 인수한 SGI의 경우 「크레이 C90」 등 벡터형 기종 사업을 별도의 독립법인으로 분사하고 본사는 SMP의 일종인 「누마(NUMA)」 방식의 「오리진」사업에 주력하는 데서도 잘 나타난다.
현재 세계 슈퍼컴퓨터 시장은 병렬형 벡터 프로세서(PVP) 방식으로는 SGI의 「크레이」시리즈, 일본 NEC의 「SX」시리즈, 후지쯔의 「VPP」시리즈 등이 있고 SMP분야는 SGI의 「오리진」, 선의 「HPC10000」, HP의 「이그젬플러」 등이 대표적이다. MPP 방식으로는 SGI의 「크레이 T3E」와 IBM의 「RS6000 SP」가 있다. 컴팩의 경우는 지난해 PC와 서버를 여러대 연결한 클러스터링 방식의 「아발론」을 발표하고 슈퍼컴퓨터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한편 IBM 등 일부에서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존 반도체 기반 프로세서의 한계를 인식하고 새로운 구조의 미래형 컴퓨터를 개발하려는 노력도 엿보이고 있다. 여기에는 구리반도체나 탄소반도체 등 신소재 반도체 개발, 인체 두뇌 작용을 모방한 신경망 컴퓨터, 원자의 양자적인 특성을 활용한 양자컴퓨팅 등을 들 수 있다.
<김상범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