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인쇄회로기판(PCB)업계에 외국 계약제조자(CM:Contracted Manufacturer) 경계령이 발동됐다.
계약제조자는 대규모 생산라인을 구축했으면서도 독자 상품을 갖지 않고 오로지 다른 회사의 제품만을 제조하는 일종의 순수 주문자상표부착(OEM) 생산업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최근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급부상하는 사업자다.
이들 CM업체들은 보통 가변생산시스템(FMS)으로 구축한 대규모 생산라인을 갖추고 계약자가 주문한 완제품을 대량생산해 전세계적으로 공급한다. 이들은 경쟁관계에 있는 업체들의 제품생산도 마다하지 않는다.
특히 CM은 완제품에 장착하는 각종 전자부품을 독자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어 전세계 전자부품업체에는 공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왜냐하면 이들 CM의 눈밖에 나면 전자부품의 해외 판로가 거의 막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독자 브랜드를 갖춘 세트업체를 대상으로 제품을 공급해온 전자부품업체들은 신흥세력으로 급부상하는 CM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국내 PCB업체의 한 관계자는 『기업 인수·합병(M&A)과 더불어 아웃소싱 바람을 타고 최근들어 외국 유명 컴퓨터·정보통신기기·반도체업체들은 독자적인 생산라인을 구축하기 보다는 OEM방식의 제품 공급시스템을 선호하고 있다』면서 『IBM·HP·선마이크로시스템스·루슨트테크놀로지스·시스코시스템스 등 미국 유력 컴퓨터·정보통신기기업체들은 최근들어 아웃소싱 전략의 일환으로 자사 제품 중 상당부분을 CM에 맡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추세에 힘입어 미국에는 CM이 우후죽순처럼 출현하고 있으며 SCI·제이빌·솔렉트론·셀레스티카 등 선두 CM들은 연간 매출액이 50억∼100억달러에 달한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따라서 이들 CM들이 연간 구매하는 전자부품 규모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으며 앞으로 이들 CM의 전자부품 구매력은 미국의 유력 세트업체 수준을 상회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처럼 전자부품 구매선이 세트업체에서 CM으로 전환되는 것에 대응, 그동안 세트업체만을 상대로 제품 공급협상을 벌여온 국내 PCB업체들은 이제부터는 CM이라는 또 다른 시어머니를 상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들 CM은 단순조립을 통해 이익을 창출해야 하기 때문에 재량권을 가진 부품 구매부문에서의 비용절감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국내 유력 PCB업체의 수출담당 임원은 설명하면서 『이들 CM의 부품 구매담당 임원은 구매부문 베테랑들로 구성돼 있다』고 귀띔했다.
여기에 이들 CM은 국적을 불문하고 가격 싸고 품질 좋은 제품만을 구매하기 위해 전세계적인 구매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어 국내 PCB산업 동향도 꿰뚫고 있다는 것.
그러나 이들 CM은 단기적인 스폿계약보다는 장기 부품 구매계약을 선호하기 때문에 한번 거래를 하면 다년간 안정적으로 PCB를 공급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여 국내 PCB업체들도 CM을 전제로 한 수출전략을 재수립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희영기자 h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