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260)

 『도와드릴 테니 돌아서세요.』

 여자가 성큼 다가서면서 말했다. 무엇을 도와준다는 것일까. 나는 그녀가 무엇을 도와주려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시키는 대로 돌아섰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무엇을 도와주려는 것일지 감이 잡히지 않았고, 마치 수수께끼를 푸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뒤로 다가온 그녀가 비누로 내 몸을 밀어주었기 때문에 때를 밀어주겠다는 말임을 알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여자는 정성스럽게 나의 몸을 닦아주었다. 여자의 손길이 나의 허리며 겨드랑이는 물론이고, 다리와 사타구니, 심지어는 불알까지 씻어주는 것이었다. 그러니 내가 흥분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솔직하게 말해서 결혼한 이후 아내에게는 물론이고, 그 어느 여자에게서도 그렇게 정성스럽고 부드러운 씻김을 당한 일이 없었다. 아주 어렸을 때 어머니가 몸을 씻어주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르지만 그것은 어렸었고, 어머니라는 것이 달랐다. 그런데 한 여자로부터 정성을 받으면서 목욕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은 성애 이전에 아주 독특한 것이었다. 그 부드러운 손길과 정성은 나를 감동시켜서 애욕 이전에 그녀를 좋아하게 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한동안 그녀로부터 헤어나지 못했고, 그것은 서울의 송혜련과의 결혼을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할 정도로 강한 경험이었다. 처음에는 송혜련에게 미안한 감정이 없지 않아 있었으나 그녀의 손길에 정성이 담뿍 담겼다는 느낌이 들자 그것마저 없어졌다.

 그날 밤 나는 욕조에서 성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예측하지 못한 돌발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한 순간의 불장난이기는 했지만, 결코 후회하거나, 사랑하는 송혜련에게조차 미안함을 느끼지 못하였다.

 한 해 후에 스즈키가 소니 회사의 기술연구실 청년하고 결혼하기 전까지 내가 일본에 갈 때마다 서너 차례에 걸쳐 관계를 가졌다. 그녀는 내가 여자에 대한 눈을 뜨도록 했던 역할을 한 것이 틀림없었다. 결혼한 후에 그녀와 함께 찍은 사진이 있어 아내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에 있는 어느 기술과장의 동생인데, 무척 상냥해. 일본 여자가 상냥하다는 것을 알게 해준 여자이지. 만약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그 여자와 국제결혼을 하려고 했을지 몰라.』

 『그렇게도 상냥한 여자야? 난 안 상냥해?』

 『당신도 상냥하지. 그러나 일본 여자의 상냥함은 못 따라갈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