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도사 "N세대" 뜬다

 「X세대는 떠나고 N세대가 몰려온다.」 어느 세대나 그들만의 언어와 몸짓이 있다. N세대는 기성세대가 도저히 풀 수 없는 암호코드로 말한다. H.O.T를 「핫」으로 읽고, 「레오나르드」 하면 배우 디카프리오 대신 다빈치를 떠올리는 기성세대들과는 다르다. 윈도를 열라고 하면 거실 창문을 여는 어른들과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네트워크는 이들에게 삶의 인프라다. 채팅은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그리고 가상공간에 존재하는 컴퓨터그래픽 아바타(Avartar)는 이들의 분신이나 다름없다. N세대에게 E메일은 전화보다 익숙하다. 전자우편을 확인하지 않고는 잠을 설친다. 접속을 끊으려는 순간 누군가 급한 메일을 보내면 어쩌나 싶어 불안해진다. 이들은 TV보다 컴퓨터를 더 좋아한다. TV는 말 그대로 바보상자다. 미국의 성인 애니메이션 중에 「비비스와 벗헤드」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우리말로 옮기면 「바보와 멍청이」쯤 되는 이 만화 주인공들은 TV 앞에 앉아 기꺼이 무뇌아(無腦兒)가 된다.

 이들을 흉내내는 부모세대를 N세대는 경멸한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쌓이면 리모컨을 누르는 대신 「스타」나 「퀘이크」로 푼다.

 N세대의 자화상을 좀더 가까이 들여다보자. N세대란 넷 제너레이션(Net Generation)의 줄임말. 인터넷과 함께 성장한 77년 이후 출생자를 가리킨다. 베이비붐세대(46∼63)와 X세대(64∼76)의 후계자인 셈이다.

 N세대를 이전 세대들과 비교해 보자.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집집마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베이비붐세대가 시작됐다. TV가 이들에겐 세상으로 열린 창이었다. 비틀스의 순회공연도 암스트롱의 달 착륙도 TV 브라운관으로 봤다.

 X세대를 주목한 작가는 「Generation X」를 쓴 더글러스 쿠플랜드. 매스컴은 이들이 사회참여에서 「배제됐다」는 뜻으로 「eXclusion」의 약자 X를 썼다. 알고 보면 X세대는 심리적인 박탈감을 상징한다. 실업난은 심각해졌는데 이미 삼촌이나 큰형뻘인 베이비붐세대가 일자리를 차지한 후라 이들은 갈 곳이 없었다.

 X세대는 또 「인비지블(Invisible)」, 즉 정체를 알 수 없는 세대로 정의된다. 그리고 「PANTS」라고도 불린다. 개인주의(Personal)적이고, 재미(Amusement)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꾸밈없이 솔직담백(Natural)하고, 사회활동에 있어 남녀 구분이 없으며(Trans­border), 자기애적(Self­love)인 성향을 가졌다는 의미. 현재 23세에서 35세 사이의 연령층인 이들은 컴퓨터와 인터넷을 최초로 사용한 그룹이다.

 정보시대의 도래와 함께 신세대에게 가장 먼저 붙여진 닉네임은 사이버펑크였다. 사이버펑크(cyberpunk)란 인공두뇌학인 「cybernetics」와 이상한 머리 모양이나 옷차림을 가리키는 「punk」의 합성어. 그 다음엔 인터넷의 대중화에 따라 네티즌이 부상했다. 네티즌(netizen)은 컴퓨터 통신망 「net」과 시민을 뜻하는 「citizen」의 조합어.

 이제는 N세대가 글로벌 키워드다. 이 말을 유행시킨 미국의 정보사회학자 돈 탭스콧. 그는 97년에 쓴 「디지털의 성장:넷세대의 등장(Growing up Digital:The Rise of the Net Generation」에서 N세대가 사회주도층으로 부상했음을 역설했다.

 N세대는 분명 그 전세대와 구별되는 특징들을 지녔다. 우선 이들은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로 불리는 정보해득력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있다.

 부모나 교사의 도움 없이도 네트워크에만 접속하면 생존이 가능하다. 다른 세대에 비해 평균지능이 높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튀는 아이디어나 창조력은 X세대가 따라잡기 힘들다.

 이들은 어쩌면 어린시절부터 가지고 놀던 장난감인 컴퓨터를 닮았는지도 모른다. 0과 1처럼 꺼지고 켜지는 것, 좋고 싫은 것이 분명하다. 「아니오」라는 대답도 자신있게 한다. 싫증이 나면 그냥 「Delete」 키를 눌러 버린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담보로 저당잡히는 바보 같은 짓은 안 한다. 간섭은 질색이다.

 현재를 즐기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다. 시스템이 다운되면 리셋시키고, 필요하면 언제든 전원을 「off」시키면 그만이다. 변덕도 심하다. 마우스만 클릭하면 상품주문이 취소되고 새로운 물건이 배달되니 그럴 법도 하다.

 N세대는 천편일률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혐오한다. 디지털시대에는 얼마든지 백인백색의 삶이 가능하다. 주입식 교육도 마땅치 않다. 요즘 사이버 세상에서 「뜨는 N세대」 김현진 씨 역시 개성을 무시당한 채 입시공부만 강요하는 고등학교를 자퇴해 버렸다.

 그리고 최연소 인터넷 웹진 편집장을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입학했다. 누구나 입는 「프리사이즈 방식」에서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식」으로 바뀌지 않는 한 이들은 교육제도와 악수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직장에서도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 평등하고 능동적인 네트워크 환경은 수직적인 명령체계를 참을 수 없게 만든다. 승진과 월급을 목표로 삼는 기성세대들은 비웃음의 대상이다. 이들은 보람을 느끼기 위해서 일하지 않는다.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할 뿐이다.

 N세대는 다중인격적인 특징을 보이기도 한다. 온라인 게임이나 채팅 사이트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다른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다. 열 개의 대화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낯설지 않다. 여러 개의 윈도 창을 열어놓고 동시에 일을 하면서 멀티태스킹이 몸에 뱄다.

 이들은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고독한 존재들인지도 모른다.

 컴퓨터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다른 사람과 얼굴을 마주볼 기회가 줄어든다. 시간과 거리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누구나 인터넷 빌리지, 사이버 커뮤니티에 입주해 가상의 이웃을 사귈 수 있게 되면서 공동체나 연대감은 희박해진다. 한곳에 뿌리를 내리고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 채 네트워크를 방황한다.

 이같은 N세대의 일면에 대해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개미와 거미의 비유를 든다. 근대문명을 가능케 한 개미와 같은 조직중심 시대는 종말을 맞게 되고, 앞으로 거미와 같은 멀티미디어 시대가 도래한다는 것.

 개미처럼 조직의 일원으로 살아가기보다 거미처럼 인터넷망에 걸려드는 정보를 먹이로 외롭게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이들은 시키지 않아도 한 가지 일에 광적으로 매달린다. 오로지 게임만 해서 N세대들의 스타가 된 데니스 퐁이 좋은 예다. 그는 애틀랜타에서 열린 E3 게임대회에서 우승한 덕분에 멋진 페라리 스포츠카를 몰고 다닌다. 퐁은 「퀘이크」 이외에도 「둠」 「워크래프트2」 토너먼트 챔피언이다. 그는 가상공간에서뿐 아니라 현실세계에서도 스타가 되기를 꿈꾼다.

 「내 이름은 wjm@mit.edu, 전자 세계의 한량이다. 나는 인터넷에서 죽치고 산다.」 윌리엄 미첼 MIT 교수가 「비트의 도시」에서 말했듯 N세대는 네트워크를 삶의 무대로 디지털혁명을 주도하고 있다.

<이선기기자 s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