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의 주요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이 최근 128MD램 생산량 확대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는 배경에는 64MD램 이후의 메모리 시장을 둘러싼 주도권 다툼이라는 경쟁의식이 숨어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최근 수년간 차세대 제품개발 및 양산경쟁에서 한국업체에 뒤져왔던 일본업체들이 128MD램 양산에 더욱 적극적이라는 사실에서 여실히 입증된다.
현재 128MD램 분야에 가장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업체는 일본의 도시바사다. 대부분 메모리 업체들이 128MD램 시장에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지난 3월부터 전반적인 사업구조를 128MD램 중심으로 교체, 현재 128MD램 생산량을 세계 최고인 650만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삼성전자에 이어 세계 2위의 D램업체인 NEC도 역시 128MD램 사업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D램 사업분야에 전반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있는 NEC는 64MD램의 생산을 영국 스코틀랜드 공장과 지난 2월 가동에 들어간 중국 상하이 공장에 집중시키는 한편 128MD램은 자국내 공장에서 양산하는 등 128MD램 사업확대를 위한 준비작업을 진행중이다.
반면 세계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현대전자·현대반도체 등 국내 반도체3사는 128MD램 사업에 비교적 관망적인 자세를 유지해왔다.
표면적인 이유는 128MD램 시장이 아직 「성숙할 만한 여건」이 되지 않았다는 것. 이에 따라 반도체3사는 지금까지 「필요한 만큼」의 양만을 소량 생산하면서 초기 시장의 과실을 챙기는 전략을 취해왔다.
결국 최근 국내 업체들이 128MD램 생산량 확대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 것은 시장여건이 상당히 무르익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우선 D램 세대교체의 기본적인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가격구조의 변화가 128MD램 양산을 추진하게 된 첫번째 이유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64MD램의 3∼4배에 이르던 128MD램 가격이 시장 측면에서 합리적이라 할 수 있는 2배 수준으로 현실화됐다. 이는 64MD램의 대체용으로 128MD램의 시장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이와 함께 D램의 주수요처인 PC의 사용환경이 대용량 메모리가 필수적인 상황으로 변하고 있는 것도 국내외 메모리 업체 128MD램 증산의 또다른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기적으로 일본보다 늦다는 사실만으로 전반적인 시장경쟁력에서 한국이 뒤지고 있다고 판단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128MD램이 용량 측면에서 64MD램의 2배이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동일한 공정을 생산하는 같은 세대 제품이기 때문이다.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일본의 128MD램 생산량 확대 움직임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128MD램 양산시점의 차이는 단지 업체별 마케팅 전략의 차이일 뿐 기술의 차이는 아니라는 뜻이다.
다만 16MD램 이후 한국업체에 세계 최강의 자리를 넘겨준 뒤 「권토중래」를 노리는 일본업체들이 이번 128MD램 양산을 주도권 탈환의 전기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국내업체에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메이저 업체들의 128MD램 생산량 확대경쟁이 불러올 시장변화는 적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일단 시장구조의 급격한 변화가 예상된다. 현재 대부분의 D램업체들이 64MD램과 128MD램 생산라인을 공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128MD램 생산이 확대된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64MD램 생산량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메인메모리 시장을 64MD램에서 128MD램으로 급격히 전환시키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 확실시된다.
더욱이 이같은 급격한 세대교체가 오히려 최근 본격화하고 있는 D램 가격상승 분위기를 더욱 부채질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전반적인 공급량이 달리는 상황에서 PC의 평균 메모리 탑재량이 늘어날 것이고 이는 결과적으로 64M와 128MD램 가격의 동반상승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최승철기자 scchoi@etnews.co.kr